원어 항목명 | 金鐵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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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鐵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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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13년 12월 7일 |
출생지 | 일본 시즈오카현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도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도 메구로구 오오카야마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도 분쿄구 혼고 7-3-1 |
원어 항목명 | 金鐵佑 |
성격 | 공학자 |
성별 | 남 |
1926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출생한 재일 한인 2세 공학자.
김철우는 1956년 재일 한인 출신으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국립 대학 교원[도쿄대학 전임 강사]이 되었다. 도쿄대학에서는 문부기관일급(文部技官一級) 겸 생산기술연구소 연구 담당 교수를 맡았다. 도쿄대학에서 일하던 시절 한국에서 포항종합제철소[포철] 건설 계획이 세워지자 도쿄대학 교원 신분으로 한국으로 건너가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후 1971년 박태준 포항종합제철소 초대 사장의 요청으로 포항종합제철소에 입사하면서 한국에 남게 되었다. 포항종합제철소가 완공되기 직전인 1973년 3월 대학 재임 중 북한에 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방북한 일로 간첩죄 혐의로 체포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6년 반 동안 구속되었다.
석방 후 포항종합제철소로 복귀하여 부사장직을 맡았다. 재임 중에는 포항공과대학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의 창설과 운영에도 관여하였다. 퇴임 후에는 한일간 기술 교류를 목적으로 한 사단 법인 한일 인재·기술협력기구를 설립·운영하였고, 한국테크노마트 이사장, 중소기업청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김철우는 2013년 12월 7일 도쿄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