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金載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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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載華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1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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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90년 7월 29일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
원어 항목명 | 金載華 |
성격 | 정치인 |
성별 | 남 |
1904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 창립에 참여한 재일 코리안 1세 정치가.
김재화는 해방 직후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의 아키타현[秋田県] 본부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반도 신탁 통치를 둘러싼 의견 대립과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좌경화에 대한 반발로 탈퇴 후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1946년 10월 3일 결성. 1948년 8월 대한민국 수립 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개칭]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김재화는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제9·10대[1950], 제13~16대[1952~1954], 제 20·21대[1958~1959] 단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학도 지원병 파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59년 말 시작된 북한으로의 재일 코리안 귀국 사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61년 한국에서 일어난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는 권일(権逸)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집행부를 비판하고, 1961년 10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의 자유화, 민주화, 한일 기본 조약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조직인 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民団正常化有志懇談会)의 결성에 관여하였다. 1967년 한국 국회 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후보가 되었지만, 6월 1일 당에 낸 헌납금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반공법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검거되기도 하였다. 1972년 시작된 유신 체제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중앙이 지지한 것에 반대하여 1973년 8월 김대중 등과 함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韓国民主回復統一促進国民会議) 일본본부[한민통, 1989년 조직 개편 후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으로 개칭]를 결성하고 1983년까지 의장대행, 의장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