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宋斗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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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斗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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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0년 |
몰년 시기/일시 | 2002년 6월 8일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북도 칠곡군 |
거주|이주지 | 일본 교토부 아미노정 |
거주|이주지 | 중국 다롄|중국 잉커우|중국 베이징 |
학교|수학지 | 일본 교토부 아미노정 |
원어 항목명 | 宋斗会 |
성격 | 사회운동가 |
성별 | 남 |
일본 패전 후 일본에서 식민지 정책 책임을 제기한 재일 한인 사회운동가.
송두회는 191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191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3남매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교토부[京都府] 아미노정[網野町]에 거주하였으며, 1930년 아미노소고등과를 졸업하였다. 만주국 수립 이후인 1933년 만주로 건너가 다롄[大連]의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에 귀의하였으며, 잉커우[營口]에 풍락서점(豊樂書店)을 열었다. 하지만 풍락서점은 이후 반만항일(反滿抗日)의 거점이라 하여 폐점 당하였으며, 관계자가 모두 체포되었다. 송두회 역시 1942년 7월 랴오양[遼陽]의 헌병대에 구속되었다.
송두회는 194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일제의 패망을 맞이하였다. 1947년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사세보[佐世保]로 귀환하여 아미노로 돌아왔으나, 외국인등록의 미등록과 불법 입국이라 하여 조사를 받았다. 1969년 송두회는 일본 국적 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1973년 일본 법무성(法務省) 앞에서 외국인등록증을 소각하고 일본 국적을 주장하였다. 이후 사할린 잔류 한국인 문제, 마루쇼[丸正] 사건의 이득현(李得賢) 석방 요구, 조선 정벌 등 서술의 시정 요구, 재한국 전쟁 피해자 유족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재판 제기, 우키시마마루 사건[浮島丸事件]의 보상 청구 소송의 원고 측 대표, 조선인 BC급 전범(戰犯) 소송 등 수많은 문제를 재일 한인 사회와 일본 사회에 제기하였다. 송두회는 2002년 6월 8일 교토대학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송두회의 작품으로는 사후인 2003년 출간된 유고집 『만주국 유민 – 어느 재일 조선인의 혼잣말[満州国遺民-ある在日朝鮮人の呟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