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裵東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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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東湖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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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9년 9월 11일 |
원어 항목명 | 裵東湖 |
성격 | 사회단체 활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 의장 |
일본에서 통일 운동과 한국 민주화 운동을 한 재일 한인 사회단체 활동가.
배동호(裵東湖)는 1915년 2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1989년 9월 11일 사망하였다.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 의장을 역임했다.
배동호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집행부를 비판하며 1962년 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民団正常化有志懇談会)를 결성하였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내의 저항 세력이 되어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고, 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의 활동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집행부와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1971년 3월 새 단장 선거에서 재일대사관의 김재권 공사가 배동호를 반국가적 행위자로 지적하는 녹음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배동호는 1971년 7월에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부터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제명되었다.
배동호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서 제명된 후, 1972년 8월 20일 민족통일협의회(民族統一協議会)를 결성해 수석 의장을 역임하며 조국 통일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72년 10월에 박정희 정권이 유신 체제로 들어가며 조국 통일의 가능성이 낮아지자 한국 민주화 운동으로 전환하였다. 김대중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한통련의 전신]를 결성하며 일본 내의 한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게 되었다. 또한 오다 마코토[小田実] 등 일본의 지식인, 비동맹회의 세력들과 연대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외연을 넓혔다. 또한 윤이상, 송두율 등 해외 한국인과 연대해 민주민족통일 해외한국인연합(民主民族統一海外韓国人連合)을 결성해 공동 의장을 맡기도 했다.
배동호의 저서에는 『애국론(愛國論)』[民族時報社, 197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