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의

원어 항목명 郭東儀
한자 郭東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0년
몰년 시기/일시 2017년 6월 12일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군
원어 항목명 郭東儀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정의

1930년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사회운동가.

활동 사항

곽동의는 1930년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났으며 리쓰메이칸 대학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곽동의는 한국 전쟁 때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였고, 1960년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초대 위원장, 민단통일문제전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61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民団正常化有志懇談会) 결성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962년 4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집행부로부터 재일한국청년동맹 위원장의 권한을 정지[정권 처분]당하였다. 곽동의에 대한 정권 처분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민주화 운동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 제명된 곽동의배동호 등이 김대중과 연대해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한통련의 전신]를 결성할 때 중심 구성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결성 후에 조직국장을 역임하였다. 1982년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사무총장을 거쳤고, 1989년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조직 개편 후에는 의장을 역임하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해외 본부 부의장을 맡아 일본에서 조국 통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로부터 귀국을 거부당하다가 44년 만인 2001년 10월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고국방문단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결성에 앞장섰다. 2004년까지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의장, 2014년까지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2017년 사망 때까지 6·15해외 측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저술 및 작품

곽동의의 저서로는 1992년 출간된 『조국통일론(祖国統一論)』 등이 있다.

참고문헌
  • 「곽동의 6·15해외 측 위원장 별세」(『통일뉴스』, 2017. 6. 12)
  • 郭東儀, 『祖国統一論』(柘植書房, 1992)
  • 『民團三十年史』(在日本大韓民國居留民團,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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