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부

원어 항목명 張明夫
한자 張明夫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50년 12월 27일
활동 시기/일시 1983년
몰년 시기/일시 2005년 4월 13일
출생지 일본 돗토리현 야즈군 지즈정
학교|수학지 일본 돗토리현 돗토리시 히가시정 2정목 112
원어 항목명 張明夫
성격 운동선수
성별
정의

1950년 일본 돗토리현에서 출생하여 일본과 한국에서 활약한 프로 야구 선수.

개설

장명부는 한국계 일본인이며 귀화 전 한글 이름은 장명부(張明夫)이고 일본명은 후쿠시 히로아키[福士敬章]이다. 장명부는 현역 시절 일본 프로 야구와 한국 프로 야구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였다.

활동 사항

장명부는 일본 돗토리현립 돗토리니시 고등학교[鳥取県立鳥取西高等学校]에서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1968년 여름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 준결승에 진출하였지만 패전하였다. 1968년 열린 드래프트 번외 지명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였다. 입단 2년째인 1970년 1군으로 승격하였다. 당시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의 기대를 받았지만 성적은 좋지 못하였다. 1973년 난카이 호크스[南海ホークス][현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였다.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감독의 지도하에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7승을 올리면서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일본시리즈에도 선발로 등판하였다. 1974년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여 일본 국적을 얻었다. 1977년 히로시마토요 카프로 이적,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15승을 두 번 달성하였다. 1979년과 1980년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우승, 히로시마토요 카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입단한 해부터 1978년까지 마쓰바라 아키오[松原明夫], 1979년 후쿠시 아키오[福士明夫], 이후 후쿠시 히로아키[福士敬章]라는 선수 등록명을 썼다.

장명부는 일본 프로 리그를 거쳐 1982년 창설된 한국 프로 야구에서도 활약하였다.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면서 장명부라는 등록명을 사용하였다. 1983년 내야수 이영구와 함께 재일 한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BO 리그에 진출하여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30승 16패 6세이브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는데, 아직도 KBO 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427⅓이닝이라는 단일 시즌 최다 이닝 투구도 기록하였다. 이후, 청보, 빙그레 이글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였다.

1991년 필로폰 사용 혐의가 드러나 마약 사범으로 구속되었다가 7월 풀려났으나 KBO 리그계에서 영구 제명됨과 동시에 대한민국에서는 영구 입국 금지 명단에 올랐다. 2005년 4월 13일 자신이 운영하였던 와카야마현[和歌山県]의 한 마작 가게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KBO 리그 4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6경기 완투, 30승 기록[다승 1위], 최다 이닝,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 75」(『오마이스타』, 2007. 12. 13)
  • 「KBO 리그 거쳐간 전설적인 해외 동포 선수들」(『일요신문』, 2017.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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