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高山登久太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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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山登久太郞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2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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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몰년 시기/일시 | 2003년 6월 15일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출생지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이마리 |
원어 항목명 | 高山登久太郞 |
성별 | 남 |
1928년 일본 오사카부에서 태어나 야쿠자로 활동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중앙위원을 지낸 재일 코리안 2세.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가족들이 모두 귀국길에 올랐으나 혼자 일본에 남았다. 단신으로 규슈[九州]에서 오사카로 돌아와 암시장 등에서 생계를 이어갔다. 암시장의 야쿠자였던 나카오 겐타로[中尾健太郎] 밑에서 야쿠자가 된 이후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946년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체포되어 징역 6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형기가 단축되어 1949년 출소하였다. 출소 후 1950년 먼 친척이 있는 시가현[滋賀懸] 오쓰[大津]에서 생활하게 된다. 여기서 야쿠자 나카가와 요시타로[中川芳太郎]와 만났고 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53년 한국 전쟁이 격화되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국 전쟁 파병을 위하여 재일한교자원병(在日韓僑自願兵)을 모집하였다.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동포 6명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쓰 지부에 지원하였다. 도쿄로 갔으나 휴전(休戰)으로 파견이 보류되어 오쓰로 돌아왔다. 1986년 3대 아이즈코테쓰카이를 계승해서 4대 아이즈코테쓰카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1992년 시행된 폭력단대책법(暴力団対策法)에 이의를 제기하며 국가 배상 청구 소송과 미디어 출연 등의 통하여 폭력단대책법 반대 활동을 전개하였다.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1997년 야쿠자를 은퇴하고 2003년 6월 15일 사망하였다.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젊은 시절부터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공헌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한 모금에도 기여하였다. 1990년 재단법인 외수한일교류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1990년 11월 50억원을 출연하였고 26명을 지원하였다.
다카야마 도쿠타로는 1989년 대한민국 체육부장관 표창, 1990년 대통령 표창, 2003년 국민 훈장 동백장(冬栢章)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