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준

원어 항목명 金文準
한자 金文準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활동 시기/일시 2002년
몰년 시기/일시 1936년
원어 항목명 金文準
성격 노동운동가
성별
정의

1894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일본 오사카부에서 활동한 재일 노동 운동가.

개설

김문준은 1894년 제주도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7년 수원농림학교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김문준은 제주도에 사립 학교를 창설하였다. 1927년 7월 일본 오사카[大阪]부로 건너가 고무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김문준은 1928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의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이듬해 집행위원장]이 되었고, 신간회 오사카지회 결성을 주도하였다. 1929년 4월 제주도 출신 소년들을 중심으로 오사카조선소년동맹을 조직하고, ‘우리가 우리의 배를’이라는 슬로건으로 제주도와의 왕래를 도모하는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제주도 출신자를 중심으로 오사카 고무공조합을 조직하였다. 12월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로 해소되려 하자, 민족적 입장에서 반대하였다. 8월 고무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준비하던 중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2년 6개월을 복역하였다. 출옥 후인 1934년 일본 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6월 조선인 노동 운동가와 『동아일보』 등 본국 언론 관계자들의 협력을 얻어 오사카에서 조선어 신문 『민중시보(民衆時報)』를 창간하였다. 내선 융화 정책에 저항하면서 재일 조선인 노동자, 상인, 해녀 등의 노동과 생활, 보건 위생, 교육, 문화, 스포츠 등 차별당하는 재일 조선인 생활 문제를 많이 보도하고 민족적인 생활권 확립과 옹호·신장을 지향하여 계급 투쟁 주축의 노동 운동을 추구하였다. 김문준은 1936년 5월 22일 옥중에서 받은 고문의 후유증과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문준의 공로를 기리어 2000년 건국 훈장 애족장(愛族章)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정혜경, 『일제 시대 재일 조선인 민족 운동 연구』(국학자료원, 2001)
  • 김인덕,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 연구』(국학자료원, 2002)
  • 金賛汀, 『検証·幻の新聞「民衆時報」: ファシズムの台頭と報道の原点』(三五館,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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