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金子文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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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子文子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근대 |
출생 시기/일시 | 19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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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6년 7월 23일 |
출생지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원어 항목명 | 金子文子 |
성별 | 여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이며, 천황제를 반대한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요코하마시[橫浜市]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친부의 학대와 가부장적 환경, 가정 불화와 부모의 이혼 속에서 성장하였다. 가네코 후미코는 무적자(無籍者)로 학교도 가지 못하는 학대를 당하였다. 9세에 외할아버지에게 입적되고 친할머니가 사는 조선의 충청북도 청원군의 고모집에 가서 살았지만, 할머니에게 7년 동안 학대와 차별을 당하였다. 그러면서 박해를 받는 조선인에 대한 동정과 가부장제에 대한 반발 의식을 갖게 되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1919년 3·1 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감격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4월 일본의 야마나시현[山梨縣] 외갓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으나, 강제 결혼에 반대하고 진학을 위해 홀로 도쿄[東京]로 이주하였다.
가네코 후미코는 1920년 식모 일과 식당 일을 하며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였다. 1922년 박열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고, 흑도회(黑濤會)에 참여하여 기관지 『흑도(黑濤)』 창간호와 2호를 함께 발행하였다. 흑도회가 사상 분화하여 흑우회를 만드는 데 참여하였고, 기관지 『후데이센진[太い鮮人]』1·2호와 이를 개제한 『현사회(現社會)』 3호의 간행 등을 함께 하였다. 1923년 4월 박열과 함께 흑우회와 별도의 대중 단체로 일본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다.
1923년 9월 3일 관동 대지진의 혼란 속에서 경찰 당국에 박열 등과 함께 보호 검속되어 천황·황태자 암살을 기도한 대역(大逆)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법정에서 자신이 대역 사상, 즉 천황제에 반대하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천명하면서 국가 권력의 전향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26년 3월 박열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4월 무기 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은사장을 찢어 버리며 저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