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陳昌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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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昌鉉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2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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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2008년 |
몰년 시기/일시 | 2012년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천군 |
원어 항목명 | 陳昌鉉 |
성별 | 남 |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바이올린 제작자.
진창현은 1929년 경상북도 김천군에서 태어났다. 14세가 되던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현[福岡県]에서 야간 중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자전거 택시 운전수를 하면서 학비를 모아 메이지대학[明治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조선 국적이라는 이유로 영어 교사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이토가와 히데오[糸川英夫] 교수의 강의 중에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에 대한 규명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인간의 힘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일 코리안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취직 차별을 당하여 바이올린 공방에 제자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부득이하게 독학으로 바이올린 제작에 도전하였으나 팔리지 않았고, 강가의 자갈을 팔아 생활하는 극빈한 나날을 보냈다. 1976년 진창현이 제작한 바이올린이 미국의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6개 부문 중 5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일약 주목을 받았다.
2002년 구술 필기로 자서전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海峡を渡るバイオリン]』을 출간하였으며, 2004년 동명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은 2004년 제59회 일본 문화청 예술제 출품작 우수상, 2005년 제59회 일본 방송 영화 예술대상 방송부문 최우수 작품상 및 최우수 주연 남우상, 2006년 제1회 한국 서울 드라마 어워드 단편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 및 음악감독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