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朴潤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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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潤玉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 12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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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05년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원어 항목명 | 朴潤玉 |
성별 | 남 |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윤옥은 사립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졸업한 후 평양의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한인 교사와 목사로부터 민족 교육을 받은 후 독립운동을 결심하였다. 1936년 6월 김현주(金顯周)·김덕윤(金德潤) 등과 함께 “민족 대중, 특히 농민 대중의 지식 향상에 힘써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목적으로 한 항일 비밀 결사인 일맥회(一麥會)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일맥회는 곧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해산하고 말았다. 1937년 2월 김현주·김덕윤·김동순(金東舜)·지광호(池光浩) 등과 다시 비밀 결사 열혈회(熱血會)를 조직하고, 박윤옥이 회장을 맡았다. 열혈회는 이후 농민 대중 지도를 통한 민족의식 배양과 농업 기술 및 경영 지도를 통한 농민 경제 향상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회원들 사이에는 비밀 유지를 위해 성명 대신 한글 한 글자를 암호로 정하고, 해마다 3월 1일과 8월 29일을 열혈회 기념일로 정해 조국 독립을 위한 기도와 단식을 하면서 항일 정신을 기렸다.
1938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4월 도쿄(東京)에 있는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신학부 예과에 입학하였다. 항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김덕윤·김동순 등 열혈회 회원들과 계속 모임을 가지면서 항일 활동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39년 11월 체포되었다. 2년 동안 미결수로 있다가 1941년 11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에서 징역 4년에 집행 유예 5년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윤옥의 공적을 기리어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