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귀자

원어 항목명 裵龜子
한자 裵龜子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 전후[추정]
몰년 시기/일시 2003년
원어 항목명 裵龜子
성격 무용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최초의 한국인 현대 무용가.

개설

배귀자는 1905년 전후 대전에서 태어나 8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일본에서 고등밀정(高等密偵)을 지낸 배정자(裵貞子)의 조카였다. 배귀자는 1910년대에 초대 쇼쿄쿠사이텐카쓰[松旭齋天勝]가 이끄는 예술 극단 덴카쓰좌[天勝座]에 입문하여 세키노에게 무용을 배웠다. 경성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을 하였는데 일본에서 조선의 연예인으로 유명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2003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배귀자는 1918년 도쿄[東京]와 경성에서 소녀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배귀자는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나 파블로바에게 사사를 받고 1926년 귀국하였다. 그리고 무용을 보급하기 위해 배귀자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당시 배귀자 연구소의 무용발표회는 근대 무용발표회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초대 덴가쓰와 덴가쓰의 남편인 흥행사(興行師) 노로 다쓰노스케[野呂辰之助]의 양녀가 되어 덴카쓰좌의 인기 스타가 되지만, 1926년 평양에서 덴가쓰좌를 탈퇴하였다. 그리고 2년 동안 휴양을 하고 1928년 경성에서 창작 무용가로서 연예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배귀자 가무극단[1935년 이후 배귀자악극단]을 결성하고 교토·오사카를 중심으로 공연을 계속하다가 1930년대 후반 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 합명 회사의 전속 극단 중 하나로 인기를 모았다. 1934년 재정 원조를 받아 동양극장을 신축하여 운영하였으며 청춘좌, 호화선 등의 극단에서 연예 생활을 계속하였다. 1935년 경성에서 동양극장을 창립하였고 1940년경 연예계를 은퇴하였다. 1945년 이후 일본을 경유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하였으며, 2003년 사망하였다.

막내 여동생으로 배귀자악극단의 인기 스타였던 배한라(裵漢拏)[할라 배 함(Halla Pai Humh), 1922~1994]가 후계자이며, 1949년 배한라는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여 하와이의 조선 무용의 일인자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배귀자의 작품으로는 「아리랑」, 「파계」, 「물깃는 처녀」, 「방아타령」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배귀자의 춤은 동생이며 배귀자악극단의 단원이었던 배한라에 의해 미국 하와이에서 전수되었고,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배귀자의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근대춤 인물사』(현대미학사, 1999)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김영희, 「일제강점기 레뷰춤[Revue Dance] 연구」(『한국무용사학』9, 무용역사기록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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