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

원어 항목명 李人稙
한자 李人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2년
몰년 시기/일시 1916년
출생지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
원어 항목명 李人稙
성격 작가
성별
정의

1900년대 초반 작가, 언론인, 신극 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한 신소설 작가.

개설

이인직은 1862년 7월 27일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국초(菊初)이다. 1902년 단편 소설 「과부의 꿈」으로 데뷔한 이래 작가, 언론인, 신극 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이인직은 1900년 2월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정치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활동 사항

이인직은 1901년 11월부터 일본의 민간 신문사인 미야코신문사[都新聞社, 현 도쿄신문사[東京新聞社]]에 견습생으로 입사해 신문 기자 연수를 받았다. 1903년경 러일 전쟁 중에 한어(韓語) 통역에 임명되어 일본군 제1군사령부에 부속되어 종군하였으며 1905년 귀국하여 1906년 『국민신보』 주필이 되었다. 1906년 7월부터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며 신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작품인 「혈의 누」를 연재하였다. 「혈의 누」는 청일 전쟁의 혼란 중에 부모와 헤어진 주인공 옥련이 일본과 미국을 다니며 갖은 곤경과 장애를 극복하고 근대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신교육과 반인습 등의 새로운 주제를 평이한 서술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1907년 6월 『만세보』가 경영난으로 폐간하기에 이르자 이완용의 후원을 받아 인수하여 『대한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어 창간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11년 4월부터 1915년까지 경학원(經學院)[1911년 조선 총독부가 성균관을 개칭한 것으로 조선 총독부의 식민 정책에 부합하는 교육 기관으로 만들었음] 사성(司成)을 맡아 『경학원 잡지』 편집에도 관여하였고 전국 유림을 관장하며 유학자들을 인솔해 일본 시찰에 나서기도 하였다. 또한 이인직은 당시부터 이완용(李完用)의 비서와도 같은 역을 도맡아 통역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16년 11월 25일 조선 총독부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인직의 작품으로는 1902년 「과부의 꿈」, 1906년 「혈의 누」, 1906~1907년 「귀의 성」,1908년 『치악산』[상], 『은세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이인직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6·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3 :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에 관련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조동일, 『신소설의 문학사적성격』(한국문화연구소, 1973)
  • 백철, 『신문학사조사』(신구문화사, 1978)
  • 김열규·신동욱, 『신문학과 시대의식』(새문사, 1981)
  •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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