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村山知義 |
---|---|
한자 | 村山知義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1월 18일 |
---|---|
수학 시기/일시 | 1921년 |
몰년 시기/일시 | 1977년 3월 22일 |
출생지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
묘소 | 일본 도쿄도 도시마구 미나미이케부쿠로 4-25-1 조시가야레이엔 |
원어 항목명 | 村山知義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예술가를 지원한 일본의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 아동문학가.
무라야마 도모요시는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로,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재일 한인 예술가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또한 1938년 3월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선의 고전 「춘향전」을 연출해 일본과 조선에서 상연하였다.
무라야마 도모요시는 1928년 일본 정부의 좌익 예술인 탄압을 피해 시즈오카의 아타미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터널 공사를 위해 조선에서 이주한 노동자들과 만나 아리랑을 배웠다. 이후 수많은 재일 조선인과 교류를 이어 갔다. 1938년 3월 자신이 연출한 「춘향전」을 도쿄의 쓰키지소극장에서 공연해 일본인에게 조선의 문화를 알렸다. 이후 공연은 오사카, 교토에서 대성황을 거뒀으며, 6월 「춘향전」 공연 준비를 위해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하였다. 10월 조선 8개 지역을 순회하며 「춘향전」 공연을 펼쳤다. 무라야마 도모요시는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춘향전」을 다양한 형태의 예술로 무대에 올렸으며 오페라로 1회[1948. 11], 연극으로 3회[1972. 4, 1973. 1, 1973. 8] 무대에 올렸다. 무라야마 도모요시는 조선 관련 작품뿐만 아니라 조선인과도 깊은 교류를 가졌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약하였던 장혁주, 유치진, 김일영, 안영일, 이화삼, 신고송, 이해랑 등 조선의 문화 예술인이 자신의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1945년 3월 22일부터 12월 17일까지 조선의 경성에 체류하며 연극과 영화 활동을 하였던 무라야마 도모요시는 조선의 문화인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다.
조선과 재일 조선인을 다룬 무라야마 도모요시의 작품으로는 1930년대 초 일본 법정에 선 조선인 노동자를 그린 「이」[『제국대학신문(帝國大學新聞)』, 1931. 11. 9], 도쿄의 시바우라의 매립지에 집단 거주한 재일 조선인의 생활을 그린 「어느 콜로니의 역사」[1935년 5월 4일 집필, 『명희(明姫)』, 1948], 도쿄의 스미다가와 강변에 사는 재일 조선인 연극인을 병문안 하는 「김군 병문안」[1935년 9월 집필, 『명희』, 향토서방, 1948], 춘향전의 세계화를 위해 집필한 시나리오 「춘향전 시나리오-조선영화주식회사를 위해」[『문학계(文學界)』, 1939. 1], 일본인 시나리오 작가의 조선 방문기를 그린 「단청」[『중앙공론(中央公論)』, 1939. 10], 경성에서 생활하던 재조선 일본인을 그린 「일본인들」[1946. 6], 조선에서 패전 체험과 해방 이후의 조선 연극계를 위해 쓴 8편의 작품이 수록된 수필집 『죽은 아내에게』[1947] 등의 작품이 있다.
무라야마 도모요시의 묘는 일본 도쿄도 도시마구 미나미이케부쿠로[東京都豊島区南池袋] 4-25-1 조시가야레이엔[雑司ヶ谷霊園]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