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小畑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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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畑實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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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9년 |
원어 항목명 | 小畑実 |
성격 | 가수 |
성별 | 남 |
1950년대 일본에서 많은 히트곡을 내고 활약한 재일 한인 가수.
오바타 미노루는 1923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재일 조선인 가수 나가타 겐지로[永田絃次郎]를 동경해서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글 이름은 강영철(康永喆)이고 소년 시절 교회의 성가대에 소속해 있었으나 오페라 가수를 지망하여, 일본음악학교에서 성악을 배웠다. 오바타 미노루는 일제 강점기부터 패전 이후에도 활약한 가수로 1979년 사망하였다.
오바타 미노루는 1941년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조선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하여 아키타현[秋田県] 출신이라고 하였다. 1942년 빅터 소속으로 「부계도의 노래[婦系図の歌]-유시마의 흰매화[湯島の白梅]」, 1943년 「간타로 달밤의 노래[勘太郎月夜唄]」로 일약 인기 가수가 되었다. 전후에는 「눈물의 장구[涙のチャング]」(1950), 「고원의 역이여 안녕[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1951)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내놓았고, 1950년대는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 3회 출연하였다. 특히 「별 그림자 길[星影の小径]」은 샹송을 베이스로 한 로맨틱한 선율과 ‘아이 러브 유’라는 영어를 가사로 사용한 참신함을 더해 오바타 미노루의 특징을 잘 살린 걸작이었다. 1950년대 오바타 미노루는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와 함께 인기 투표에서 남녀 1위를 기록하였지만, 가스가 하치로[春日八郎]의 등장으로 순위에서 떨어진 것을 계기로 1958년 은퇴하였다. 일본에서는 공적으로 명확하게 출신을 밝히지 않았는데, 독특한 가창법은 한국적인 발음이나 억양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사카모토방적[坂本紡績] 창시자인 서갑호(徐甲虎)의 장녀와 결혼하고, 1960년대에는 일본 연예계를 은퇴하고 한국 연예계에 진출하였다. 오바타 미노루는 1969년 일본으로 컴백하여 레코드 제작과 공연을 하였고, 1979년 급성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오바타 미노루의 히트곡으로는 「부계도의 노래[유시마의 흰매화]」, 「간타로[勘太郎] 달밤의 노래」, 「눈물의 장구」, 「고원의 역이여 안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