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金素雲 |
---|---|
한자 | 金素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07년 1월 5일 |
---|---|
몰년 시기/일시 | 1981년 11월 2일 |
원어 항목명 | 金素雲 |
성격 | 시인 |
성별 | 남 |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시인, 번역가, 수필가로 활동한 재일 한인.
김소운은 1907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교환(金敎煥)이고, 호는 소운(巢雲)·삼오당(三誤堂), 필명은 데쓰 진페이[鉄甚平]이다. 1920년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개성중학교 야간부를 중퇴하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기자로 생활하였다. 1927년 잡지 『지상의 낙원』에 한국 농민 가요를 연재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등의 후원을 받아 『조선민요집』을 출간하였고, 이후 조선의 구전 동요와 민요 등을 모아 번역, 소개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김소운이 발간한 번역서들은 당시 한국 문화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를 비롯한 많은 문화 예술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소운은 1945년 2월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에 출석하였을 때 친일 발언을 한 것이 한국 정부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14년간 일본에 체재하게 되었다. 1965년 귀국한 후에는 『현대한국문학선집』[전5권]과 『한국미술전집』[전15권] 등을 일본어로 번역하였고, 『한일사전』을 편찬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사후에는 자신의 인세를 도쿄대학 비교문학회에 기부하였는데, 이후 이 기금으로 김소운상이 만들어지는 등 동아시아 비교 문학에 기여한 인물로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소운의 작품으로는 1929년 『조선민요집』[태문관], 1952년 『마이동풍첩(馬耳東風帖)』[고려서관], 1951년 『목근통신(木槿通信)』[중앙공론], 1955년 『삼오당잡필(三誤堂雜筆)』[진문사], 1954년 『은수삼십년(恩讐三十年)』, 1968년 『정해 한일사전(精解韓日辞典)』 등이 있다.
김소운은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일본에 소개한 점을 인정받아 197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81년 일본문화디자인회에서 주관하는 국제문화디자인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