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원어 항목명 金聖珉
한자 金聖珉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5년 5월 15일
활동 시기/일시 1936년
몰년 시기/일시 1969년 11월 9일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부
거주|이주지 일본 도쿄도
학교|수학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부
원어 항목명 金聖珉
성격 소설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 문단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개설

김성민은 1915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김만익(金萬益)이며, 미야하라 소이치[宮原惣一]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한때 일본 도쿄로 유학하였다. 잠시 영화 제작에 종사하기도 하고 귀국해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만포선 역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활동 사항

김성민은 1936년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사에서 주최한 현상 공모에 응모한 소설 「반도의 예술가들[半島の藝術家たち]」이 1등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선데이 마이니치』에도 연재되었다. 일본 소설가 요코미쓰 리이치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문학 활동을 계속하였고, 전시하 일본에서 『녹기연맹』, 『혜련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라는 국책에 따른 이러한 작품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문화, 예술부문에 수록되었다. 한편, 대중 소설로서 당시 조선의 도시 문화, 청년의 사상 동향을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해방 직전에 일본 도치기현 사노에 살았는데 도쿄, 가나가와에 있던 김달수, 이은직, 장두식과 함께 회람 잡지 『계림』을 간행하였다. 김달수에 따르면 김성민은 “조선 민족이라든가 독립 같은 그런 정치적인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소위 예술지상주의자였다.”고 한다. 해방 직후 귀국해 1948년 영화 「사랑의 교실」의 감독, 제작, 시나리오를 담당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5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으로 손꼽히며, 1969년 11월 9일 중화민국[타이완]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성민의 소설로는 『반도의 예술가들』[1936], 『봄소낙비』[1937], 『녹기연맹』[1940], 『단풍나무의 삽화』[1940], 『혜련 이야기』[1941] 등이 있다. 수필로는 『거절』[1941], 『새벽의 서사』[1942] 등이 있으며, 평론으로는 『가장 의적이라는 것』[1942]이 있다. 영화로는 「사랑의 교실」[1948], 「심판자」[1949], 「애원의 향토」[1954], 「북위 41도」[1954]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www.kmdb.or.kr)
  • 金聖, 『緑旗聯盟』(『日本植民地文学精選集』30, ゆまに書房,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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