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명

원어 항목명 金熙明
한자 金熙明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976년경[추정]
추모 시기/일시 1977년 1월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
원어 항목명 金熙明
성격 작가
성별
정의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조선인 작가이자 운동가.

활동 사항

김희명이 일본에 건너간 시기는 불명확하나 1922년 재일 조선인이 일본 도쿄도에서 발행한 잡지 『아시아공론(亜細亜公論)』에 조선 시(詩)를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무렵 이미 도쿄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23년 『아시아공론』의 후속 잡지인 『대동공론(大東公論)』의 발행인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도쿄에서 발행된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계 잡지에 시와 소설, 평론, 희곡을 발표하였다. 노동 운동과 공산당계 조직과의 관련성은 명확하지 않지만, 1927년 메이데이 직전에 사회주의계 일본어 잡지에 「식민지즉시해방(植民地即時解放)」을 슬로건으로 추가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시기 레닌의 민족 운동에 대해 쓴 논집의 일본어 번역본에 대한 서평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쓴 것으로 보아 당시 공산주의와 접점을 가지고 활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후 공산주의 운동과 멀어져 1930년대 중반 도쿄부[東京府] 촉탁을 맡아 사회 사업에 관련된 일을 하였다. 그사이 도쿄에 살고 있는 조선인 생활 실태 조에 참여하거나 1939년 편저로 『전시 독일 군사보호대책[戦時ドイツの軍事保護対策]』을 출판하였다. 해방 후에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에 소속되어 부단장과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구(旧) 조선총독부 관계자들이 관련해 있던 일한친화회(日韓親和)에도 참여해 기관지 『친화』의 편집장을 맡았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 공존해야 한다고 역설함과 동시에 재일 한인 처우 개선을 주장하였다. 그동안 역사서도 집필하였는데, 일본어 저서로 1967년 『흥선대원군과 민비 : 조선왕조최근세사[興宣大院君と閔妃:朝鮮王朝最近世史]』, 1972년 『일본 삼대 조선침략사 : 왜구, 임진왜란, 일한합병과 총독정치(日本の三大朝鮮侵略史:倭寇·壬辰倭乱·日韓合併と総督統治)』를 출판하였다. 『친화(親和)』1977년 1월호에 게재된 김희명 추도문의 집필자가 1월 2일 전화로 부고(訃告)를 받았다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 김희명은 1976년 말이나 1977년 초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 및 작품

김희명의 작품으로는 1939년 『전시 독일 군사보호대책』, 1967년 『흥선대원군과 민비 : 조선왕조최근세사』, 1972년 『일본 삼대 조선침략사 : 왜구, 임진왜란, 일한합병과 총독정치』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희명 추모 기사가 『친화』1977년 1월호에 게재되었다.

참고문헌
  • 『在日コリアン辭典』(明石書店, 2010)
  • I·K生, 「金熙明先生, お別れなのですね」(『親和』, 19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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