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鄭然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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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然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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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9년 |
원어 항목명 | 鄭然圭 |
성격 | 소설가 |
성별 | 남 |
1899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출생한 초기 재일 조선인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
정연규는 1923년 재일 조선인 문학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떠돌이의 하늘』과 『생의 번민』을 일본어로 저술하였다. 1920년대 전반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계로부터 박열(朴烈)에 버금가는 조선 출신의 좌익적 동지로 환영받았다. 당시 허남기의 활동에 대해서는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를 위로하는 문집 『예술전선(藝術戰線) 신흥문예 29인집』[1923]에 정연규의 작품 『혈전의 전야[血戰の前夜]』와 마에다코 히로이치로[前田河廣一郎]의 『선인(鮮人) 작가 정씨의 근업(近業)』(『아사히신문[朝日新聞]』 1923년 7월 4회 연재) 등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가 언급한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도 항의와 추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후 논조를 바꾸어 1930년대 들어 일본 내지에 있는 조선인은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선인환선론(朝鮮人還鮮論)을 외쳤고, 게다가 일본의 대륙 정책을 열렬히 옹호하는 『만몽시대』, 『혼』 등의 개인 잡지를 간행하였다. 일본 패전 전 아내의 고향 이와테현[岩手縣]으로 대피하였고, 해방 후에는 언론 활동을 하다가 1960년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정연규는 1979년 사망하였고, 정연규의 아들 정대균이 2006년 아버지의 모습을 『재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在日の耐えられない軽さ]』으로 정리하였다.
정연규의 작품으로는 1920년 한성도서에서 간행된 『혼』, 1922년 『예술전선』 게재된 『혈전의 전야』 등이 있다. 이외에 『미쓰코의 삶[光子の生]』, 『오사와자작의 유서[大沢子爵の遺書]』, 『그[彼]』 등 여러 일본어 단편 소설을 창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