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 고레야

원어 항목명 千田是也
한자 千田是也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 7월 15일
몰년 시기/일시 1994년 12월 21일
원어 항목명 千田是也
성별
정의

1904년 일본에서 태어나 한일 우호 운동을 전개한 일본인 배우이자 연출가.

개설

센다 고레야의 본명은 이토 구니오[伊藤圀夫]이다. 센다 고레야는 관동 대지진 이후 본인의 지진 체험을 토대로 한일 우호 운동에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센다 고레야는 ‘일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릴 만큼 뛰어난 건축 기사이자 발명가인 이토 다메키치[伊藤爲吉]의 여섯째 아들로 1904년 태어났다. 세계적 무용가인 장남 미치오[道郞], 무대 미술가인 넷째 아들 유지[祐司], 무대 장치가인 다섯째 아들 기사쿠[熹朔] 등을 배출한 가정 환경 속에서 어려서부터 연극 및 예술을 친숙하게 접하면서 자랐다.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고 당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학부 독문과 청강생 신분으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던 센다 고레야는 관동 대지진 직후 센다가야[千馱ヶ谷]의 자택 근처에서 자경단에게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할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예명인 센다 고레야는 당시 사건에서 따온 것으로 ‘센다가야의 코리안’을 빗댄 것이라 한다. 1924년 창립된 쓰키지[築地] 소극장의 문예부원 겸 연기 연구생이 되어 공연에 출연하였다. 1925년 탈퇴하고 마르크스주의 예술 연구회에 참여하였다. 1927년 독일로 건너가 프롤레타리아 연극을 배웠다. 1932년 귀국한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 예술 운동에 계속 관여하다가 일본 당국의 탄압으로 여러 차례 체포와 투옥을 당하였다. 1944년 2월 아오야마 스기사쿠[靑山杉作], 도노 에이지로[東野英治郞], 기시 데루코[岸輝子] 등과 함께 극단 배우좌(俳優座)를 창립해 대표로 활동하였다. 전후(戰後)에도 신극계(新劇界) 리더 중 한 명으로 활약을 이어 가는 한편, 자신의 지진 재해 체험을 토대로 조일(朝日) 우호 운동에 관여하였다. 일본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평가받는다. 센다 고레야는 1994년 12월 21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센다 고레야의 작품으로는 1975년 『또 하나의 신극사 센다 고레야 자전[もうひとつの新劇史 千田是也自伝]』, 1978년 『센다 고레야 연극 대화집[千田是也演劇対話集]』상·하, 1980~1992년 『센다 고레야 연극논집[千田是也演劇論集]』전9권, 1995년 『극백 센다 고레야[劇白千田是也]』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千田是也, 『もうひとつの新劇史: 千田是也自伝』(筑摩書房, 1975)
  • 高木隆史, 『大震災·1923年東京: 天災地変は人間をどう変えたか』(原書房, 1983)
  • 浅利慶太, 『時の光の中で: 劇団四季主宰者の戦後史』(文藝春秋, 2004)
  • 위키피디아 재팬(https://ja.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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