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郭仁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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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仁植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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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8년 3월 3일 |
추모 시기/일시 | 1989년 |
활동지 | 일본 |
원어 항목명 | 郭仁植 |
성격 | 화가 |
성별 | 남 |
1919년 경상북도 달성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화가.
곽인식(郭仁植)은 1919년 1월 15일 경상북도 달성에서 태어나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전통적인 양화(洋畵)를 주류로 하는 일본 미술의 흐름에서 벗어나 입체, 오브제 등 공간 전체에 걸린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일본에서 미술 활동을 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화단에서까지 색채의 마술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 3월 3일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일본에서 활약하였다.
곽인식에게 니혼미술학교의 생활, 긴자[銀座] 산책, 도쿄 거리 스케치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전시 체제에 놓이게 되었다. 곽인식은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죽게 되어 있건만, 어찌하여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하는지 도무지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암울한 시대에 일본에서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화가로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전쟁이 격렬해지자 그림을 그리는 문제보다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후 전쟁이 끝났지만, 곽인식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곽인식은 작품을 만드는 일에서 위안을 얻고 살아갈 기력을 얻는 동시에 미술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1954년 일본 『요미우리신문』 앙데팡당전 최우수상, 1956년 일본 『아사히신문』 주최 신인선발전 신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1989년 일본 도쿄의 갤러리 Q에서 추도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