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つかこうへ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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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48년 4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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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3년 |
활동 시기/일시 | 2007년 |
몰년 시기/일시 | 2010년 7월 10일 |
출생지 | 일본 후쿠오카현 우시쿠마 |
거주|이주지 | 일본 도쿄도 기타구 |
학교|수학지 | 일본 후쿠오카현 가마시 가미야마다 1244-5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미타2정목 15-45 |
원어 항목명 | つかこうへい |
성격 | 극작가 |
성별 | 남 |
1970~198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코리안 극작가 겸 연출가, 소설가.
쓰카 고헤이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근무처였던 예비교에서 학생의 부탁으로 희곡을 쓴 것을 계기로 극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학생 극단 및 와세다대학 연극 서클 등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대학 재학 시절에 언더그라운드연극 제2세대의 극작가, 연출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일대 붐을 일으키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재일 코리안 2세인 쓰카 고헤이는 본인의 필명에 대해 ‘격동의 1960년대를 헤쳐나온 학생 운동가 오쿠 고헤이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재일 코리안에 대한 불공평이 언젠가는 공평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으로 지었다고도 하였다. 1974년 극단 쓰카 고헤이 사무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1980년 구마가이 마미와 첫 결혼을 하고, 1982년 이혼하였다. 1983년 쓰카 고헤이 극단의 여배우 고마 나오코와 재혼하였다. 쓰카 고헤이가 귀화를 하지 않은 관계로 부부가 다른 성을 사용하였다. 1982년 쓰카 고헤이 사무소를 해산하고 집필 활동에 전념하였다. 1987년 11월 한국에서 「아타미살인사건」을 상연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1994년 도쿄도 기타구와 협력하여 기타구 쓰카 고헤이 극단을 설립하고, 1996년 오이타시와 협력하여 오이타시 쓰카 고헤이 극단을 창설하였다.
쓰카 고헤이는 자신의 연출에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연극 대본을 배우들에게 나누어 주고 모두 암기하게 한 후 연습을 하는 과정에 대본의 상당 부분이 다시 수정되고 완성되었다. 쓰카 고헤이가 연습 중에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당시의 분위기 등을 파악하여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대사를 바꾸고 배우들에게 연습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무대의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암전은 사용하지 않고 음향과 화려한 댄스 등을 통해 장면전환을 유도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무대 장치도 필요한 최소한의 소도구만을 사용하였다.
쓰카 고헤이는 1976년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서[戦争で死ねなかったお父さんのために]』 등을 통해 일본 사회에 대한 비평을 기술하였다. 1986년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리는 날[広島に原爆を落とす日]』에서 조선인 일본 장교가 원폭 투하기 ‘에놀라 게이’의 파일럿이 된다는 설정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1974년 「아타미살인사건[熱海殺人事件]」으로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하였으며, 1976년 제14회 골든애로우상 연극상, 1980년 제15회 기노쿠니야연극상 단체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 소설 『가마타행진곡[蒲田行進曲]』를 발표하여 제86회 나오키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 제6회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 제42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 자수포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