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일본 오사카부 다카츠키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4년 11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4년 11월~1945년
정의

1944년 일본 육군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 오사카부 다카츠키 지역에 조성한 지하 공장.

개설

다카츠키[高槻] 지하 창고의 일본어 발음인 ‘다카츠키 치 카 소코’를 줄여서 다치소로 통칭하고 있다. 나가노[長野]현의 마쓰시로 대본영[松代大本營]에 버금갈 정도의 지하 시설이며 육군 5대 지하 시설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위치

오사카부 다카츠키시[高槻市] 동북쪽에 있는 나리아이초[成合町] 마을에 있다.

변천

일본 육군 중부군 사령부가 1944년 11월부터 굴착을 시작하였다. 총 4개의 지하 시설을 조성했으며, 공사에 인근 주민과 학생도 일부 동원되었으나 가장 위험한 터널 공사는 조선인을 동원하였다. 3,500여 명의 조선인이 동원되었는데, 이 가운데 600명은 강제 동원 조선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하루 11시간 이상 노동하였으며, 탈출 방지와 감시 등을 위해 4명이 경찰관이 상주하였다. 1945년 5월말에 2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난공사였으나 치료 시설은 없었다. 공사장 안은 화장실도 갖추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였다.

형태

일본 육군은 지하 창고라는 명분을 내걸고 만들었으나 실제는 1945년 2월부터 가와사키[川崎] 항공기공업주식회사[현재 가와사키중공업(Kawasaki Heavy Industries, Ltd., KHI)] 지하 공장으로 전용되었다. 패전 시까지 총연장 약 4.5㎞의 제1공장 터널군(群)을 거의 완성했는데, 현재 입구 두 군데와 몇 군데의 지하호가 남아 있다. 1945년 6월경 맞은편 산에 총연장 약 6㎞의 제2 공장 굴착을 개시하다가 패전으로 미완성된 지하호 약 750m가 남아 있다. 그밖에 제3·제4 터널군도 있으나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현황

해방 후 노동자 합숙소[함바] 터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과 현지 농민 간에 토지를 둘러싼 다툼이 종종 발생하였다. 하지만 본래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관여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이 다툼은 1981년에야 겨우 해결되었다.

지역 활동가들이 1990년에 ‘다카츠키 다치소 전적 보존회’를 발족하고, 다치소 보존과 필드워크 실시, 가이드 북 발간 등을 통한 시민 역사 평화 교육과 지역 공동체 인식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마을 회관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朝鮮人 强制連行·强制勞働 ガイドブツク: 高槻 ‘タチソ’ 編』(解放出版社, 1999)
  • 『朝日新聞』(2014. 8. 28)
  • 『오마이뉴스』(201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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