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德香追慕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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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香追慕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일본 후쿠오카현 가호군 게이센마치 요시쿠마 |
시대 | 현대/현대 |
건립 시기/일시 | 1942년 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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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복원 시기/일시 | 1982년 5월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80년 |
원어 항목명 | 德香追慕碑 |
원어 주소 | 日本国福岡県嘉穂郡桂川町吉隈 |
영문 주소 | Yoshikuma Keisen-machi, Kaho-gun, Fukuoka-ken |
성격 | 추도비 |
1936년 일본 후쿠오카현 탄광 갱내 화재로 사망한 조선인과 일본인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추모비.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아소 다로[麻生太郎]의 조부가 소유한 아소광업 요시쿠마[吉隈] 탄광에서 1936년 1월 25일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천여 명이 갱도 안에서 작업 중이었지만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갱도 입구를 막아 빠져 나오지 못한 갱부들은 사망하였다.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 탄광 측에서 은폐 축소하고, 이에 대한 자료를 내놓지 않아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명부상 밝혀진 이들만 해도 조선인 24명, 일본인 5명이었다. 대다수의 희생자가 조선인 20~30대 남성이었다.
2005년 일본 민간 단체인 ‘강제 동원 진상 규명 네트워크’가 1980년대부터 후쿠오카 현청과 아소광업 부근의 사찰 등에서 자료를 수집해 밝힌 바에 의하면 요시쿠마 탄광 한 곳에서만 사망한 조선인이 450여 명에 달하고, 이를 아소광업 7개 사업소 전체에 적용하면 희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아소광업은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후쿠오카 현청의 자료에는 아소광업 근무 중 사망한 조선인은 56명만 기록되어 있다.
1936년 탄광 사고 이후 희생자 공양실행위원회를 조직하여 1942년 3월 10일에 요시쿠마 탄광 재해 희생자를 추도하는 도쿠코 추모비[德香追慕碑]를 세웠다. 하지만 도쿠코 추모비는 후방을 지키다 희생당한 이들의 충혼비로 왜곡되었다. 1969년 탄광이 폐쇄되고, 광대한 부지가 주택 단지로 개발되면서 도쿠코 추모비는 방해물이라고 하여 1980년 철거되었다. 1982년에 일부 지역 원주민들, 특히 부인회의 강한 요청에 의해 위령비는 원래보다 작은 규모로 재건되었다.
도쿠코 추모비는 후쿠오카현[福岡県] 가호군[嘉穂郡] 게이센마치[桂川町] 요시쿠마[吉隈]에 있다.
전면에는 ‘德香追慕碑[도쿠코 추도비]’라고 새겨져 있고, 그 옆에 도쿠코 추모비를 세운 안내비가 함께 있다. 도쿠코 추도비 안내비에는 1936년 1월 25일 지쿠호 요시쿠마 탄광에서 화재로 조선인 25명이 희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도쿠코 추모비는 1982년 새롭게 건립되었고, 기존 위령탑이 전쟁 충혼비로 이용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도쿠코 추모비와 관련한 실체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도쿠코 추모비 공양실행위원회는 묘비 안내문에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으로 한일 병합이 강행된 사실과 일본으로 도항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산 우선을 위해 가혹한 노동에 내몰려 탄갱 재해가 증가하였고, 요시쿠마 탄광 희생자는 그 결과로 발생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