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関東大震災韓国人慰霊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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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關東大震災韓國人慰靈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미나미구 호리노우치정 잇초메 |
시대 | 현대/현대 |
건립 시기/일시 | 1971년 7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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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미나미구 호리노우치정 잇초메 |
원어 항목명 | 関東大震災韓国人慰霊碑 |
원어 주소 | 日本国神奈川県横浜市南区堀ノ内町一丁目 宝生寺 |
성격 | 위령비 |
관련 인물 | 이성칠 |
소유자 | 호쇼지 |
관리자 | 호쇼지 |
1971년 관동 대지진 당시 학살된 재일 조선인을 위해 건립한 위령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지방 본부가 1971년 한국인 위령비를 건립하였고, 매년 추도 행사를 하고 있다.
191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横浜]에 살고 있던 사회 사업가 이성칠은 관동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재일 조선인의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하였으며, 위령과 추도 활동을 주도하였다. 1924년 9월 1일에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1주기 법요를 위해 여러 사원을 찾아다녔지만 호쇼지[宝生寺]만이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그 후 매년 호쇼지에서 이성칠에 의해 법요가 진행되었다. 이성칠 사후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가나가와현 지방 본부가 이를 계승하여 추도 법요를 하고 있으며, 1971년 9월 1일에 ‘관동 대진재 한국인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관동 대진재 한국인 위령비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미나미구[南区] 호리노우치정[堀ノ内町] 잇초메[一丁目] 호쇼지 경내에 있다.
관동 대진재 한국인 위령비의 크기는 약 1m 정도이며,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비의 전문에는 ‘関東大震災韓国人慰霊碑’라고 새겨져 있다. 그 아래 ‘建立委員 在日本大韓民國居留民團神奈川縣地方本部. 團長 孫張翼, 議長 田炳武, 監察委員長 吉秉玉, 商工會々長 洪勾杓, 商銀理事長 李鐘大, 商工會専務 朴逑祚 , 韓國湖南人親睦會々長 鄭東仁, 韓國學園理事 崔春植, 世紀 一九七十年 九月 壱日’이 같이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労働市場を求めて来日関東一円に在住した韓国人が大正拾弐年九月壱日正午襲った関東大震災に因る直接又は間接の被害を受けて空しく異国の露と消えた。これらの怨霊は永いこと忘れ去られていたが, 第二次世界大戦の終結後, 社会事業家で横浜在住の李誠七氏の努力と当時の住職佐伯妙智先生の好意により, この地に鎮魂以来毎年九月壱日を期して民団神奈川県地方本部主催で慰霊祭を挙行してきた。紀元一九七十年九月壱日例祭の折孫張翼田炳武鄭東仁氏が中心に発起人一同の賛同を得て本県在住同胞有志の淨財の寄付と現在住職佐伯真光先生の土地提供の好意を得て, 幸に茲に慰霊碑を建立, 永遠に関東大震災による韓国人怨霊の冥福を祈るものであろ. 世紀一九七一年九月壱日建立’라는 건립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년 9월 1일에 호쇼지 본당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주최의 법요가 열린다. 관동 대지진 발생 시각인 11시 58분에 맞추어 위령의 종을 울리고, 그 후 위령비 앞에서 분향한다.
관동 대지진 당시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조선인이 학살을 당하였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 관동 대진재 한국인 위령비를 건립한 이후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고 있으며, 역사의 현장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