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大阪社会運動顯彰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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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阪社會運動顯彰塔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
시대 | 현대/현대 |
건립 시기/일시 | 1970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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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
원어 항목명 | 大阪社会運動顯彰塔 |
원어 주소 | 日本国大阪府大阪市中央区大阪城3 |
영문 주소 | 3 Ōsakajō Chūō-ku, Ōsaka-shi, Ōsaka-fu |
GPS 좌표 | https://www.google.co.kr/maps/place/3+%C5%8Csakaj%C5%8D,+Ch%C5%AB%C5%8D-ku,+%C5%8Csaka-shi,+%C5%8Csaka-fu+540-0002+%EC%9D%BC%EB%B3%B8/@34.6867158,135.518693,15z/data=!3m1!4b1!4m5!3m4!1s0x6000e0cd77bd509b:0x2fa69aafac405fde!8m2!3d34.6826726!4d135.5280826 |
성격 | 건축물 |
1970년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이 포함된 오사카 지역의 사회 운동을 기리기 위해 오사카시 주오구 오사카성 공원에 건립한 현창탑.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大阪社會運動顯彰塔]의 건립은 1956년 9월 24일 오사카 지방 통일 메이데이 실행위원회가 모리노미야[森ノ宮]에 소재한 오사카 시립노동회관에서 개최한 ‘전후노동운동사망자추도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1960년 5월 1일 오사카 지방 통일 메이데이에서 건립이 결의되었고, 1966년 오사카 지역 노동자와 농민, 민주 단체, 유지 등의 협력에 따라 전개된 모금 활동 기금으로 1970년 10월에 준공되었다. 그 후 1992년에 연합대판과 노동 복지 사업 단체가 자금을 분담하여 개수 공사를 완성하였다.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은 오사카시[大阪市] 주오구[中央区] 오사카성 공원[大阪城公園] 내에 있다.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은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4개의 기둥이 사방 20m의 상층부를 지탱하고 기반을 이루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탑의 앞면에 ‘大阪社會運動顯彰塔[오사카 사회운동 현창탑]’이라고 각자되어 있다. 그 아래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의 관리 운영과 사회 운동 자료 수집 정리 및 운동사 간행을 위해 ‘오사카 사회운동협회’를 설립하였다. 1970년부터 1991년까지는 매년 10월 15일에 ‘사회운동사망자합사제’를 거행하였으나, 1992년부터는 ‘사회운동사망자현창추도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년 새로운 현창자 명단이 적힌 방명판을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 내부에 게시하는데, 현재 1,600명 가까운 사회 운동 사망자가 현창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재일 조선인으로는 김문준과 조몽구가 현창되어 있다.
김문준[1894~1936]은 제주도에서 출생한 후 1920년대부터 오사카 조선인 노동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동아통합조합운동을 전개하였고, 1930년대에는 『민중시보』[1935년 5월 창간]와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오사카 거주 조선인 민족 운동의 토대를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1930년 8월에 고무 공장 노동자 파업을 준비하던 도중 치안유지법으로 검거되어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출옥하였으나 수감 중에 얻은 후유증으로 1936년 5월에 병사하였다. 제주 출신의 조몽구[1908~?]는 1920년대부터 오사카의 조선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조선인 운동가로서 1931년 7월에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받고 1935년 12월까지 도쿠시마[德島] 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의 내부는 추도식이 열릴 때만 공개하고 있다. 추도식은 매년 10월 15일에 현역 사회 운동가를 비롯하여 수백 명이 참석하는 성대한 합사제로 개최되고 있다.
김문준과 조몽구가 일본인과 함께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에 현창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김문준과 조몽구의 활동이 일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