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독립선언기념비

원어 항목명 2·8獨立宣言記念碑
한자 二·八獨立宣言記念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사루가쿠정 2-5-5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2년
원소재지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사루가쿠정 2-5-5
원어 항목명 2·8獨立宣言記念碑
원어 주소 日本国東京都千代田區猿樂町2-5-5
영문 주소 2-5-5 Sarugakucho Chiyoda-ku, Tokyo, Japan
관련 인물 이광수
크기(높이, 너비, 두께) 1m[높이]
관리자 재일본 한국 기독교청년회
정의

1919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을 기리는 기념비.

개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에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19년 1월 6일에 재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주최 웅변대회가 열려 독립운동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최팔용 등 임시 실행 위원을 선출하고, 그 실천 방법을 위원들에게 위임하였다. 이에 임시 실행 위원들은 실천 방법으로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그것을 일본 각계와 각국 영사관에 송부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또 조선 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독립 선언서, 결의문, 민족 대회 소집 청원서 등을 작성할 것도 결의하였다. 그리고 독립 선언서 기초를 이광수에게 일임하고, 운동의 실행 방법, 국내외 운동과의 연계 문제, 운동 자금 문제 등을 협의하였다. 이후 1919년 1월말 송계백은 독립 선언서를 휴대하고 서울에 도착하여 최린·현상윤과 만났으며, 이광수는 상해로 가서 2월 초에 영·미·불 3개국 수반에게 독립 선언을 타전하고, 『차이나 프레스』, 『노스차이나 데일리뉴스』에 기사 게재를 의뢰하였다.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에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회관에서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주최 측은 학우회 임원 선거를 위해 유학생 대회를 소집한다고 하여 일제 경찰의 감시를 느슨하게 하였다. 그리고 개회와 동시에 전격적으로 조선 청년독립단대회 개최를 선언하였다. 이날 사회는 최팔용이었다. 독립 선언문과 결의문의 낭독자는 각각 백관수, 김도연이었으며, 참석자는 400~600명에 이르렀다. 한편 같은 날 오전 조선 청년독립단은 독립 선언서·결의문·민족 대회 소집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공사관, 일본 국회 의원, 조선 총독부, 신문사·잡지사, 학자들에게 발송하였다. 이날의 독립 선언으로 11명의 대표 가운데 상해로 출국한 이광수를 제외하고, 최팔용·윤창석·김도연·이종근·송계백·김철수·최근우·백관수·김상덕·서춘 등 1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 직후에도 체포를 면한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후속 독립 선언이 계획되었다. 일본 제국 의회에 독립 청원을 목적으로 1919년 2월 12일에 히비야 공원 집회를 계획하고, 선전문도 작성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무산되었다. 또 1919년 2월 23일에는 조선 청년독립단 명의로 민족 대회 소집 촉진 집회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역시 무산되었다. 그러는 중 국내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9일에는 재동경 조선 청년독립단 동맹휴학촉진부 명의로 격문이 발송되었는데, 동맹 휴학 후 귀국하여 국내 3·1 운동에 합류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1919년 5월 15일까지 재일 유학생 350여 명이 귀국하였다.

2·8 독립선언은 곧바로 국내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유학생들이 재일 노동자층과 직접 연계하여 실천적 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계 청년 단체가 도쿄의 재일본 한국 기독교청년회[YMCA] 회관 입구에 2·8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당시 재일본 한국 기독교청년회 회관의 위치는 현재 위치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립 경위

2·8 독립선언기념비는 2·8 독립선언 제63주년이 되던 1982년에 재일본대한민국청년회재일본대한민국학생회 등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계 청년 단체에서 세웠다.

위치

2·8 독립선언기념비는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區] 사루가쿠정[猿樂町] 재일본 한국 기독교청년회관 입구에 있다.

형태

기단 위에 회색 사각형의 석비로 되어 있다. 크기는 약 1m 정도이다.

금석문

전면에 ‘朝鮮獨立宣言一九一九 二·八記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현재 재일본 한국 기독교청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3·1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2·8 독립선언을 기념하고 있으며, 재일 한인과 한국 관광객이 답사를 통해 역사성과 정체성을 되새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사: 일제의 무단 통치와 3·1 운동』47(국사편찬위원회, 2001)
  • 이윤상, 「3·1 운동의 배경과 독립 선언」(『한국독립운동의 역사』18,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15(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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