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사건

원어 항목명 浮島丸事件
한자 浮島丸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5년 8월 24일
전개 시기/일시 2004년 11월 30일
발생|시작 장소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 연안
원어 항목명 浮島丸事件
정의

1945년 8월 24일 재일 조선인 귀환자가 승선한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사건.

개설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17시 20분경 교토[京都]부 마이즈루시 연안 해역에서 해군 특설 수송함 우키시마호[浮島丸, 4,730톤]가 갑자기 침몰하였다. 일본 정부 발표에 의하면 승조원 및 승객 549명이 사망하였다. 우키시마호에는 아오모리[青森] 방면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 3,735명이 귀국을 위해 승선해 있었다. 부산으로 운행 중에 진로를 변경하여 마이즈루[舞鶴市]에 기항하려다 침몰되었다. 전후 일본의 해난 사고 사상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다. 일본 정부 발표에는 조선인 노동자 3,725명 중 524명, 승조원 255명 중 25명, 총 549명이 사망하였다고 하지만 무기명 승선자를 포함한 사망자는 2,000여 명에 달한다는 증언도 있어서 일본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시하는 일도 일어났다.

경과

우키시마호에 송환 명령이 내려진 것은 1945년 8월 19일이며, 정부가 징용 해제 방침을 결정하기 이전의 일이다. 이 때문에 우키시마호의 침몰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재판의 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서는 일본 언론의 소극적 보도, 아오모리의 경비부가 출항 명령을 내린 이유, 해군 관계자의 자폭설 등의 의문점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결과

1992년 우키시마호에 탑승했던 한인 생존자 21명과 유족 59명이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한 국가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1년 교토 지방 재판 판결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있었지만, 2003년 5월의 오사카[大阪] 고등 재판소 판결에서는 침몰 원인을 기뢰에 의한 침몰로 규정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 후 2004년 최고 재판소에서는 상고를 기각하고 고등 재판소의 판결을 확정하였다.

1971년에 2회에 걸쳐 신원이 판명된 희생자의 유골이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1978년 8월 24일에 희생자 추도비가 제막되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金賛汀, 『浮島丸釜山港へ向かわず』(かもがわ出版, 1994)
  • 品田茂, 『爆沈·浮島丸: 歴史の風化とたたかう』(高文研, 2008)
  • 『エイジアン·ブルー浮島丸』(映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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