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철도쟁의

원어 항목명 三信鐵道争議
한자 三信鐵道爭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아이치현 기타시타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0년
발생|시작 장소 일본 아이치현 기타시타라군
원어 항목명 三信鐵道争議
정의

1930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발생한 대규모 재일 조선인 노동자 파업.

개설

쟁의가 벌어진 곳은 아이치현[愛知] 기타시타라군[北設樂郡] 미와무라[三輪村] 가와이[川合]·나가오카[長岡] 구간 철도 공사 현장이었다. 이 공사는 산신[三信] 철도주식회사가 사오토메구미[五月女組]라는 회사에 청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오토메구미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낙찰받은 것을 다시 하청을 주어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에 혹사당하고 있었고 열악한 공사 현장에서 임금도 체불되고 식량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노동자를 불안에 빠뜨렸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노동조합전국협의회와 니가타[新潟] 조선노동조합, 도요하시[豊橋] 합동노동조합의 조선인 활동가가 현지에 들어가 파업을 조직하였다.

경과

1930년 7월 29일에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 3만 원을 즉시 지급, 작업 중 부상자에게 치료비와 일당 지급, 사망자 부조료 지급’ 등 9개 조건을 내걸고 파업에 들어갔다. 수백 명의 쟁의 단원은 그 지방의 실력자와의 협상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고 나서 결속하여 노사 협의를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1930년 8월 18일 아침 나고야[名古屋] 등 각지에서 모인 경관대가 쟁의단 본부를 습격하여 노동자 314명을 구속하였다. 1930년 8월 25일에는 현 경찰부 특고 과장이 강제 조정하여 체불 임금 일부를 받아냈지만, 쟁의는 사실상 패배하였다. 그러나 쟁의를 지도한 활동가 중 한 명인 박광해(朴廣海)는 그 지역 일본인 노동자와 농민에게 준 영향 등을 언급하며 그 의의가 작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산신철도쟁의는 토건 노동 현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조선인 노동자 파업으로서, 1930년대 대표적인 파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동 운동의 불모 지역이었던 아이치현 일본인 사회 운동계에 충격을 주었고, 이후 아이치현 조선인 노동자의 조직화와 일본 노동자 농민 운동에 영향을 준 노동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平林久枝, 「三信鐵道爭議について」(『在日朝鮮人史硏究』創刊號, 1977)
  • 朴慶植, 『在日朝鮮人運動史: 8.15解放前』(三一書房,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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