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朝鮮民衆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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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民衆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교토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37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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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朝鮮民衆党 |
1937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들이 결성하려했던 민족주의 정치 단체.
1925년 일본에서 보통선거법이 성립됨에 따라 참정권을 가지게 된 재일 조선인이 대폭 증가하였으며 재일 조선인들의 정치 의식도 고양됐다. 한편으로 1932년에 일본 무산 정당을 통일해 결성된 사회대중당이 1936년과 1937년 총선거에서 크게 당세를 확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선거에서 조선인 후보자는 난립 상태로 참패했다.
이같은 상황 아래 교토조선인문제협의회 위원장 정태중은 “재일 동포의 각종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는 정치 결사를 조직하고 정치적 진출을 이뤄 내 오랫동안 쌓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1937년 6월 교토조선인친목회, 조선인자동차운전자친목회, 반도경우회[半島京友會] 등의 회원이 중심이 되어 재교토조선인유지간담회를 개최했고 조선 민중당을 결성하기로 했다.
조선 민중당 결성을 이끌던 정태중 등은 주택이나 취직 차별, 도항 증명 제도 철폐 등의 문제에 대응해 오던 교토 지역의 조선인 지도층이자 민족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토부[京都府] 공안 당국은, 정태중은 민족의식이 극히 농후하고, 발기 취의서, 강령, 표어 등이 ‘불온’하다고 경계해 재일 조선인들의 당 결성을 저지하고자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결성 대회를 한 달 앞둔 7월 7일,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이 일어나 중국에 대한 침략 전쟁이 전면화되자, 공안 당국은 정태중을 불러 조선 민중당 결성을 중지하도록 종용했다. 정태중은 이를 받아들여 7월 20일 긴급 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의논한 결과 준비위원회 해산, 즉 조선 민중당의 결성 중지를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