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월회

원어 항목명 土月会
한자 土月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3년 5월
해체 시기/일시 1940년
최초 설립지 일본 도쿄도
원어 항목명 土月会
정의

1923년 5월 일본 도쿄도에서 박승희, 김기진 등 재일 한인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연극 단체.

개설

토월회는 처음 신월회[新月會]라 불렀으나, 현실[土]을 도외시하지 않고 이상[月]을 좇는다는 뜻으로 토월회라 고쳤다.

변천

한국에서 신극(新劇) 운동은 통상적으로 192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 근대적인 자각, 자유, 평등, 개인의 권리, 봉건적 유교 사상에 대한 비판, 남녀 평등의 주장 등을 주제로 한 신파극(新派劇)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도쿄 유학생들은 1920년 2월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여 ‘동우회(同友會) 순회 연극단’을 편성하여 1921년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모국 방문 순회공연을 실행하였다. ‘동우회 순회 연극단’의 뒤를 이어 박승희(朴勝喜) 등의 도교 유학생들이 토월회를 조직하였다. 당시 회원은 박승희, 김기진(金基鎭), 김복진(金復鎭), 이서구(李瑞求), 박승목(朴勝木), 김을한(金乙漢) 등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토월회의 첫 공연은 1923년 7월 4일부터 8일까지 조선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공연에서 토월회는 조지프 유진 필로트(Joseph Eugene Pillot)[1886~1966]의 「기갈(飢渴)」, 안톤 체호프의 「곰」, 버나드 쇼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남편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였나[How He Lied to Her Husband]」, 박승희의 「길식(吉埴)」 등 대부분 서양 근대의 단막극을 상연하였다. 사실적인 무대 장치, 자연스러운 회화체 대사, 사실적이고 이야기식의 극 연출 등 새로운 신극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찬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난으로 실패하였다. 제2회 공연에서는 톨스토이의 「부활」 등을 상연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성공하였으나 창립 동인들은 대부분 토월회를 탈퇴하였다. 이후 토월회는 예술적 내용과 현실적인 영업을 동시에 추구하는 극단 운영 방식을 추구하여 1925년 3월부터 1년간 광무대(光武臺)를 전속 극장으로 하여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박승희가 각색한 「춘향전」을 장기 공연하기도 하였다. 이후 토월회는 1925년 11월부터 지방 순회공연을 시작하였으며 1940년까지 존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초기 토월회의 활동을 『폐허(廢墟)』, 『영대(靈臺)』 등 낭만성이 강한 문예 동인지 활동과 연결하고 『백조』 동인 홍노작·안석영 등이 참가하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토월회의 연극을 낭만주의로 본다. 하지만 그것은 토월회의 한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고 학생극·중간극[개량 신파극]·통속 신파극으로 변화를 거듭한 토월회 전체에 대한 평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두현, 『한국 연극사』(민중서관, 1973)
  • 이두현, 『한국의 공연예술』(현대미학사, 1999)
  • 박노춘, 「한국 신연극 50년사략」(『신흥대학교 논문집』2, 신흥대학교, 1959)
  • 박승희, 「토월회의 과거와 현재를 말함」(『조선일보』, 1929. 10. 31~1929. 11. 21)
  • 박승희, 「토월회 이야기」(『사상계』, 196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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