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기교풍회

원어 항목명 甘木矯風会
한자 甘木矯風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후쿠오카현 아사쿠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 12월 6일
최초 설립지 일본 후쿠오카현 아사쿠라군
원어 항목명 甘木矯風会
성격 내선융화단체
정의

1938년 일본 후쿠오카현 아사쿠라군에 설치된 내선 융화 단체.

개설

아마기교풍회는 본래 1870년대 미국에서 여성들이 금주 운동을 전개하면서 조직한 기독교 단체이다. 1890년대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에서는 야지마 가지코[矢島楫子] 등이 1886년에 조직하여 1893년에 일본 기독교부인 교풍회로 발전하였다. 전시 체제기에는 폐창 운동(廢娼)운동에 기여하였으나 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아마기교풍회는 1938년 조직되어 1939년 협화회의 결성을 예비하고 보조하였다.

설립 목적

친목 단체이며, 아사쿠라상조회의 성격을 탈피하고 관의 지도를 받아 황국 신민화에 박차를 가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변천

1938년 후쿠오카현[福岡]의 각지에서 교풍회의 조직이 본격화하였는데, 12월 6일 조선인상조회를 해산하고 아마기교풍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재일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친일 단체로 보인다. 또한 창립식에 재일 조선인 4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조선인 거주자 전체가 조직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기 경찰서장이 회장, 아마기정장 이하 22개 정촌장(町村長)이 고문으로 참여하는 등 관변 단체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 1939년 협화회의 결성을 예비하고 보조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이후 조직의 유무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후쿠오카현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교풍회가 활동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기교풍회도 존속하였을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아마기교풍회의 창립 목적은 창립식에서 회원 대표로 임근춘이 “우리는 황국 신민으로서 굳은 신념 하에서 충성 군국에 봉사할 것”을 선서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황국 신민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었다. 군내를 5개의 지도구로 나누어 보도원 혹은 지도원의 지도를 받아 흰옷 착용과 조선어 사용 등 조선인의 전통적인 풍습을 타파하고 ‘순내지화’를 꾀하였다. 1939년 9월 협화회의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전쟁 협력에 동원한 조직이며, 황국 신민화 정책에 적극 협력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九州日報』(1938. 11. 15., 12. 6)
  • 『大阪毎日新聞』(1938. 12. 6.,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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