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京都朝鮮靑年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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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都朝鮮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교토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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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일본 교토부 |
원어 항목명 | 京都朝鮮靑年同盟 |
성격 | 청년단체 |
1928년 일본 교토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 청년 운동 단체.
1928년 교토에서 조직되었으나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다.
창립 대회에서 신간회 지지, 근우회 지지, 청년 총동맹 가입, 노동농민당 지지, 파벌주의 박멸, 대중 비간섭 동맹 지지, 『대중신문』 지지, 선언 발표 등을 결의한 것으로 보아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 운동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
1928년 1월 28일에 교토에서 조직되었다. 조직 당시 임원은 집행 위원장 김정두(金正斗), 서무 상임 집행 위원 박제환(朴濟煥), 집행 위원 백동기(白東基), 김악(金惡), 정치조사부 상임 집행 위원 오재구(吳載龜), 집행위원 정휘세(鄭輝世), 한철수(韓哲洙), 조직선전부 상임 집행 위원 조옥현(趙沃鉉), 집행 위원 한재식(韓在植), 곽일선(郭一先), 교육 출판부 상임 집행 위원 도범(都範), 집행 위원 한균(韓均), 황종수(黃宗洙), 재정부 상임 집행 위원 안종년(安鍾年), 집행 위원 유진상(柳鎭祥), 조중환(曺仲煥), 체육부 상임 집행 위원 최명직(崔明稷), 집행 위원 박기원(朴基遠), 정봉협(鄭鳳浹)이었다.
창립 직후인 1928년 2월 2일 교토 조선청년동맹을 비롯하여 도쿄 조선청년동맹, 오사카 조선청년동맹은 각지의 청년 동맹을 총괄하는 단체로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을 결성할 것을 협의하였으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임원 가운데 정휘세, 조옥현, 김정두가 1928년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총국 사건으로 검거된 것으로 보아 교토 조선청년동맹은 조선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단체였다고 판단된다.
조선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 교토 지역의 청년 운동을 사회주의적으로 지도하려 하였다. 청년 운동을 일본 전역의 조선인 청년 운동을 지도할 목적으로 하였던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재일 조선인 청년 운동에 의미있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