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今治一般労働組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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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今治一般勞動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에이메현 이마바리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5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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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今治一般労働組合 |
원어 주소 | 日本国愛媛県今治市喜田村1丁目2-1 |
전화 | 0898-48-8704 |
1925년 일본 에이메현 이마바리시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들이 적극 참여한 일본 노동총동맹 지부.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은 1925년 1월 일본 노동총동맹의 지부로 에이메현[愛媛縣] 이마바리시[今治市]에 설치되었는데, 이마바리시 거주 재일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일제의 내선 융화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였다.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은 이마바리시 거주 재일 조선인의 노동 문제와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1925년 1월 22일 창립 당일 인노시마 노동조합을 대표한 김광평이 연설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마바리시의 재일 조선인들이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조직의 변천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25년 8월 6일 이마바리 노동총동맹과 공동 주최로 노동 문제 대연설회가 개최되어 중사연합회(重四聯合會) 주사인 김광평이 선전 전단을 배포하였다. 11월 5일 오사카 철공소 인노시마 공장의 노동 쟁의 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거, 투옥되었던 같은 단체의 총무부원인 다나카 조사쿠[田中長作]의 출옥을 계기로 김광평 등 6명을 연사로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1925년 9월 이마바리시에 내선공존회라는 내선 융화 단체가 조직되자 내선공존회를 비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은 투쟁에서 “민족적 박해와 지배 계급의 박해하에 근근이 살아가는 비참한 조선 동포의 단결은 필연적으로 우월 민족에 대한 불평과 지배 계급의 횡포에 대한 분노를 포함하고 있다. 민족적 박해를 받는 조선 동포로서의 올바른 목적을 확립”하고 “이마바리 일반노동자조합과 공동 투쟁하라.”라고 주장하였다.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의 내선공존회에 대한 비판, 반대 투쟁은 1929년 6월에도 이어져 “이마바리에 현재 조선인 170명이 거주하는데 과반수는 실업자이다. 내선공존회 회장 등은 자본가의 앞잡이로 내선공존회의 목적은 늘 실업군을 확보해 만일의 경우 자본가에게 도움을 주는 데 있다. 자주적으로 조합을 만들어 투쟁해야 한다.”라며 내선공존회에 대한 투쟁을 다시 한 번 주장하였다.
이마바리 일반노동조합은 이마바리시 거주 재일 조선인의 계급적 의식을 고취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민족 투쟁으로 지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계급적·민족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