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新幹会東京支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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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東京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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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31년 |
원어 항목명 | 新幹会東京支会 |
1927년 일본 도쿄도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설립된 신간회의 지회.
1927년 5월 7일 도쿄의 와세다[早稲田]대학 스코트홀에서 창립되어 지회장 조헌영, 총무간사 전진한, 윤길현, 오희병, 송창렴, 김준성, 강소천, 임태호, 간사 금황파, 최병한, 장지형, 박형채, 함상훈, 홍양명, 정헌태, 유원우, 정익현, 안병주, 유영준, 김원석, 전부일, 임종웅 등이 선출되었다. 1927년 12월 21일에는 지회장 박량근, 총무간사 강소천, 천매근, 이선근, 송창렴, 함상훈, 임종웅, 조중곤, 간사 김상혁, 이상현, 김영기, 이덕진, 이우적, 장준석, 김강, 박야민, 이병호, 장도환, 진병로, 김수명, 유영복, 이상조였다. 이 무렵 신간회 도쿄지회는 조선 공산당 일본부에 의해 장악되었다. 즉 신간회 도쿄지회는 1928년 1월 초 「전민족 단일 전선 파괴 음모에 관하여 전조선 민중에게 호소함-통일 전선을 각란하려고 하는 신파벌귀의 정체를 폭로하고 신간회 도쿄 지회 임시 대회의 소집을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는 박형채, 이우진, 임종웅 등을 배척하고 기존 간부를 옹호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신간회 도쿄지회 간사회에서는 허일, 홍양명, 전진한 등을 ‘미친개’라 하고 이들을 파벌주의자로 규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민족주의계와 서울파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에 대한 조선 공산당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신간회 본부에서는 이관용을 조사 위원으로 파견하여 사태를 파악하고 사태가 정리되지 않으면 신간회 도쿄지회 대의원의 전국 대회 출석을 정지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신간회 도쿄지회는 1931년 6월 신간회 본부의 해소에 따라 해소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활동은 근우회 도쿄지회,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조선인단체협의회 등 도쿄 지역의 재일 조선인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1927년 반동 단체 민중회 박멸 운동, 관동 대지진 당시 학살 동포 추도회, 조선 총독 폭압 정치 반대 운동, 조선 공산당 사건 비공개 공판 반대 운동, 사코와 반제티 사형 처분 반대 운동, 중국 시찰단 조선 대표 파견 운동, 국치일 기념 운동, 러시아 혁명 기념 운동, 조선인 대회 소집, 니시간다서[西神田署]고문 사건 항의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8년 국치일 기념 투쟁, 1929년 원산 총파업 지지 전문 발송, 3·1 기념일과 국치 기념일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신간회 도쿄지회는 일본 도쿄 지역의 민족 유일당으로서 도쿄 지역 재일 조선인 운동을 국내의 민족 운동과 연결한 점과 연대 활동을 통해 재일 조선인 운동을 지도한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