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청년회

원어 항목명 三一靑年会
한자 三一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 3월
개칭 시기/일시 1925년
원어 항목명 三一靑年会
정의

1922년 3월 일본 한신[오사카, 고베 지역] 지역에 조직된 재일 조선인 민족 운동 단체.

개설

삼일청년회는 1922년 3월 기독교 단체로 조직되었다가 1924년 사회주의 민족 운동 단체로 성격을 바꾼 한신[阪神] 지역의 재일 조선인 단체이다. 삼일청년회는 일본 무산 대중과의 연대 활동에 주력하였다.

설립 목적

삼일청년회는 1922년 3월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조선인 교화와 지도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나 1924년 민족 운동 단체로 성격이 바뀌어 민족 해방과 신분 해방 운동을 전개하였다.

변천

삼일청년회는 1922년 3월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조직 당시의 임원은 확인할 수 없으나 1924년 고베[神戸]소학교 학생인 이중환(李重煥)의 활동에 의해 삼일청년회 내에 사상선전부를 설치하고 7월 수평운동가인 기모토 쇼타네[木本正胤]와 연계를 맺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기독교 단체로서의 성격에서 탈피하여 민족 운동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1924년 11월 14일 제1회 식민지해방 대연설회 당시 회장은 이중환이었다. 1925년 2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하였고, 혁신 총회를 개최하여 조직의 명칭을 삼일무산청년회로 바꾸고 강령을 변경하였다. 강령은 본회는 합리적 협력 사회를 실현할 신인의 교육과 투사의 수련을 꾀함, 본회는 세계 무산청년의 조직적 단체 운동을 기함, 본회는 더욱 우리 조선 민중의 특수한 처지에 감응해 신흥 계급의 제종 운동을 기함이었다. 이로 보아 사회주의 단체로 전환되었다고 판단된다. 집행위원으로는 이중환, 박망, 김달환, 신기천, 김석, 신재용, 은흑해, 여파 등이 선출되었다. 해체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4년 8월 5일 조선 무산자사회연맹 등과 함께 조선인 언론압박 탄핵대회를 개최하고, 11월 제1회 식민지해방 대연설회, 12월 약소민족해방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오사카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식민지해방 대연설회에는 수평사 회원 30명, 일본노동총동맹 회원 50명 등 일본인 방청객을 포함하여 3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때 회장 이중환이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약소민족해방 강연회에서는 조선 독립 등을 주제로 연설하여 중지 명령을 받았으며, 김임(金任) 등 2명이 검거되었다. 1925년 2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조직의 명칭을 삼일무산청년회로 변경하였다.

의의와 평가

삼일청년회는 한신 지역의 재일 조선인 민족 운동 단체로서 일본의 무산 대중과 연대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국제주의적 노선을 통해 민족과 계급의 해방을 지향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1(三一書房, 1975)
  • 堀内稔, 『兵庫朝鮮人労働運動史八·一五解放前』(むくげの会, 1988)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