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堺朝鮮労働同志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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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堺朝鮮勞動同志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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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堺朝鮮労働同志会 |
성격 | 노동운동단체 |
1924년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 지역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 단체.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는 오사카 서부에 있는 사카이에서 조직되어 오사카 지역 조선인 노동 운동 단체 및 일본의 노동 운동 단체와 연대를 통해 사회주의적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다.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의 구체적인 설립 목적은 확인할 수 없으나 활동 내용으로 보아 사회주의적 노동 운동이 설립 목적으로 보인다.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는 1924년 1월 무렵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다. 1924년 4월 회장 김경선(金敬善), 부회장 김현태(金鉉泰), 박수부(朴守富), 이한영(李漢榮)이었다. 1924년 8월 15일 600여 명이 참석하여 제2회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제2회 정기 총회에서는 회의 취지 및 강령, 규약의 변경의 건, 희생자에 관한 건, 조선인 노동자 차별 대우에 관한 항의 방법의 건 등을 논의하였다. 이로 보아 제2회 정기 총회에서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의 목적과 강령, 규약 등이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926년 6월 1일 회장 김현태의 사회로 제3회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1926년 당시 대표자는 김현태, 하상호였으며, 회원은 약 160명이었다.
1924년 4월 16일 오사카 조선노동동맹 제2회 총회를 응원하기 위해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 간부와 회원 50여 명이 모였으나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해산되었다.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는 1924년 일본노동총동맹이 주관한 메이데이 투쟁에 사카이 동지회청년단과 협의하여 참여하였다. 메이데이 투쟁과 관련하여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 회장 김경선은 4월 25일 우의단체 대표들과 함께 전단 배포와 조선인 노동자의 참가를 권유하는 전단을 조선인 단체가 직접 제작, 배포할 것을 결정하고 ‘노동자 형제여!’라는 전단을 인쇄하였다. 메이데이 투쟁에는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 회원 150명을 비롯하여 조선인 400여 명이 참여하였다. 8월 5일 일본노동총동맹과 수평사의 후원을 받아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 삼일청년회, 남흥여명사 등과 함께 조선압박탄핵대회를 개최하였다.
1925년 2월 15일 오사카 지역에서 전개된 노동법안 반대 투쟁에 2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였으며, 2월 22일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하였다.
사카이 조선노동동지회는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를 중심으로 오사카 지역에서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을 지도함으로써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오사카 지역의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한편, 1926년 제3회 정기 총회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오사카 연합회 창립 대회에 제출할 건의안 등을 심의한 사실로 미루어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오사카 연합회에 가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