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공영회

원어 항목명 內鮮共栄会
한자 內鮮共榮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칭 시기/일시 1928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9년 4월
원어 항목명 內鮮共栄会
성격 내선융화단체
정의

1928년 일본 도쿄도에서 설립된 재일 조선인 내선융화 단체.

개설

처음에는 일선공영회(日鮮共榮會)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나 1928년에 내선공영회(內鮮共榮會)로 개칭하여 활동한 재일 조선인 친일 단체이다. 내선공영회는 일본 각지에 지부를 두고 기관지 『공영(共榮)』을 발간하였다.

설립 목적

내선공영회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회는 편협한 민족적 관념을 배척하고 아세아적 대동 단결이 긴급하고 필요하다는 자작을 촉진한다. 둘째, 본회는 내선인 사이에 의지의 소통을 꾀하며 동포애의 정신을 고취하고 공존 공영의 실을 거두기 위해 내선인의 결혼을 장려한다. 셋째, 본회는 정의의 관념에 입각하여 사회의 불공평한 차별 철폐를 고조시킴과 동시에 함부로 악사상에 침윤해 공안을 해치는 경향을 배척한다.’ 이로 보아 내선공영회는 일제의 지배 이념인 내선 융화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처음에는 일선공영회로 출발했으나 1928년에 내선공영회로 개칭하였다. 내선공영회 회장은 김진옥(金振玉)이었으나 다른 간부들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8년 11월 메구로 지부, 오자키 지부, 12월에는 지바 지부, 1929년 1월 이케우에 지부를 설치하는 등 도쿄 내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특히 지바 지부는 경시청 내선 고등계장의 소개로 조선인들을 지바현 야마베군 시라사토정의 어민 조합에 가입시키면서 설치하였다. 회원 수는 1929년 200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1931년 5명, 1932년 50명, 1933년 3명이었다. 1930년 이후 단체의 세가 급감하여 지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1929년 4월 단체의 임원은 회장 김진옥, 총무 박제식(朴濟植), 메구로 지부장 이동성(李東成), 간사장 김우정(金禹鼎), 총무 한일범(韓一凡), 외무부장 김두문(金斗文), 지바 지부장 황필헌(黃弼憲), 방범부장 권상용(權尙容), 오자키 지부장 임윤종(林允鍾), 선전부장 전채빈(全采彬), 총무 유홍식(柳洪植), 위생부장 조상용(曺尙容), 이케우에 지부장 문용환(文容煥), 총무 강일용(姜日龍)이었다. 명예 고문에 도야마 미쓰루[頭山滿], 상담역 기요우라 쓰네미치[淸浦桓通], 이기동(李起東), 와타나베 시게루[渡邊茂], 헤바라 히코시로[部原彦四郞]가 있었다. 그러나 1932년에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도야마 미쓰루,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아다치 겐조[安達謙藏], 도쿠도미 이치로[德富猪一郞], 노무라 류타로[野村龍太郞], 오구치 기로[大口喜六], 다테이시[立石知滿], 마쓰하라 덴키치[松原傳吉], 마키노 시즈오[牧野賤男] 등이 고문, 기타야마 요시조, 오미카미 젠기치[大神善吉], 가쓰라타 주베[佳田忠兵衛], 시마다 히로시[島田寬], 헤바라 히코시로 등이 상담역으로 선임되었고, 김진옥은 주간, 주필은 박일주, 유세부장 기와베 다이치, 직업부장 손상부 등이 임원으로 있어서 조선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특히 고문과 상담역에는 당시 일본의 거물급 정치인이 망라되어 있어 1930년 이후에는 회원 조직이 아닌 기관지 『공영』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8년 10월 쇼와 천황의 즉위를 기념하는 어대전 기념 사업 때 조선인 1호당 국기 1매를 배포하도록 요청하였고, 1928년 11월 국기 배포 요청이 수용되자 이를 기념하는 전단을 살포하였다. 또 내선공영회 단체 내에 무료 직업 소개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1929년 4월에 기관지 『공영』을 발간하였다. 『공영』은 이후 수차례 휴간과 재발간을 반복하는 등 발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발행이 순조롭지 못한 것은 단체의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영』에는 내선인의 결혼 장려와 호적법 개정을 주장하는 논설을 게재하여 내선 융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박준금의 대의사 당선을 축하하는 글을 게재하여 야마토 민족의 융화성과 의협적 정신을 칭송하였다.

의의와 평가

내선공영회는 도쿄의 일부 지역에 지부를 설치할 정도로 조직을 갖춘 단체였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장려하고 호적법의 개정을 주장하는 등 내선 융화를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친일 단체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1(三一書房,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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