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矯風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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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矯風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34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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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矯風会 |
성격 | 내선융화단체 |
1934년 일본 오사카에서 조직된 내선 융화 단체.
오사카[大阪] 지역 각 경찰서 관내에 설치되어 재일 조선인 교화 사업에 역점을 두었으며, 이를 통해 1936년 이후에는 일본의 협화사업의 모범이 되었다.
오사카 지역의 재일 조선인을 대상으로 내선 융화를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오사카부에 설치된 내선 융화 사업조사회의 결정에 따라 1934년 10월에 조직되었다. 이마미야[今宮], 쓰루하시[鶴橋], 이즈오[伊豆大] 등 재일 조선인 밀집 지역에 조직되어 관내 경찰서장이 회장이 되었다. 이후 1935년 6월에는 이마후쿠[今福], 나가쓰[中津], 나카모토 등의 경찰서 관내에도 교풍회가 조직되었고, 1936년 8월에는 소네자키[曽根崎], 아미지마[網島], 후쿠시마[福島], 사카이[堺] 등의 경찰서 관내에도 조직되었다.
1935년말 재일 조선인 3,958세대, 18,211명이 교풍회원이 되어 오사카 거주 재일 조선인 세대의 1/6, 재일 조선인 인구의 9%가 교풍회 회원이 되었다. 1936년에는 재일 조선인 교풍회원의 수는 증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 오사카부 내선협화회가 오사카부협화회로 개편되면서 교풍회는 협화회의 지부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사카 각 경찰서 관내의 교풍회에는 조선 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자 2명과 재일 조선인 중 특히 인물, 수완이 좋은 자 1명으로 구성된 전무 지도원이 배치되어 각종 생활 방책을 지도하였다. 지도원에게는 35~55엔의 보수와 함께 매달 5엔의 여비가 지급되었다. 지역별 교풍회는 일장기 게양, 청소 활동, 재주 조선인 명부 조정, 아동 취학 장려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철저히 재일 조선인 교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1937년에는 국어 상용을 사업 지침으로 제시하였다. 오사카 지역의 교풍회의 활동은 주요 부현에 협화회가 설치되던 1936년 이후 일본 각지의 협화사업과 협화회 지부 조직 사업의 모범이 되었다.
일장기 게양, 청소 활동, 재주 조선인 명부 조정, 아동 취학 장려 등의 활동을 통해 일제의 내선 융화 사업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