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애회

원어 항목명 公愛会
한자 公愛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1년
최초 설립지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시
원어 항목명 公愛会
성격 내선융화단체
설립자 박재용
정의

1931년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시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 일본 동화 단체.

개설

1931년 조직된 오이타[大分] 지역의 일본 동화 단체로 1937년 이후 징병제 실시와 관련된 제반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과 침략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설립 목적

일본 동화 단체로 설립되었으며, 1937년 이후에는 징병제의 실시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변천

1931년 5월 10일 박재용(朴載庸)을 회장으로 조직되었다. 1931년 김동수(金東洙)를 회장으로 조직된 내선 공애회와는 별개의 조직이다. 그러나 1937년 이후에는 박재용이 회장으로 있던 공애회에 대한 신문 기사에서 내선 공애회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선 공애회로 개칭하였거나 김동수 회장의 내선 공애회를 흡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공애회의 회원 수는 1931년 130명, 1932년 70명, 1933년 80명, 1934년 70명, 1936년 70명이었다. 1930년대 말까지 존속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공애회의 조직 직후 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37년부터 1938년까지는 징병제 관련 운동에 앞장섰다. 1937년 8월에 즉각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의 실시가 불가능하다면 지원병제라도 시행할 것을 주장하면서, 200여 명의 조선인의 서명을 받아 박춘금 등 대의사에게 전달하였다. 또한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국방 헌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1938년 1월까지 581명의 조선인에게서 705원을 모금하였다. 1938년 1월에 지원병 제도 실시가 발표되자 발표를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수상 등 관련자에게 감사장을 발송하였다. 1938년 1월 28일 개최된 국책 순응 지원병제 실시 축하 대회에 참가하였고, 1938년 2월 15일에는 오이타현의 9개의 조선인 일본 동화 단체와 함께 ‘벳부시 반도인 지원병제도 실시 축하 및 시국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이때 박재용은 공동 의장을 맡아 대회를 주관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본 오이타 지역의 일본 동화 단체로서 재일 조선인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원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大阪每日新聞』(1938. 1. 26, 1939. 5. 21)
  • 『特高月報』(日本 内務省 警保局 保安課, 193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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