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생형설회

원어 항목명 苦学生螢雪会
한자 苦學生螢雪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말~1922년 초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2년 6월
원어 항목명 苦学生螢雪会
정의

1920년대 초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고학생의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조직되어 민족 운동을 전개한 단체.

개설

고학생형설회(苦學生螢雪會)는 도쿄 지역 조선인 고학생의 친목과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나 『동아일보』의 자치론을 배격하는 활동을 하는 등 민족 운동에도 관여하였다.

변천

1921년 말부터 1922년 초에 유진걸(柳辰杰) 등 30여 명의 조선인 고학생들이 조직하였다. 창립 당시 회장은 이필호(李弼昊), 총무 정명원(鄭命源), 내무부장 이상봉(李相鳳), 외무부장 이상현(李相鉉), 문화부장 유진걸, 재무부장 유연표(柳淵杓), 상사부장 이종모(李鍾模), 의사부장 최영복(崔永福)이었다. 1922년 10월 회장의 사망에 따라 백무(白武)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1923년 신슈[信州]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1924년 1월 제3회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유기태(劉期泰)를 회장, 이상현을 총무로 선임하였다. 이때 『동아일보』의 사설 ‘민족적 경륜’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자 재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북성회 등과 함께 이를 규탄하였다. 1924년 8월 20일 기숙사 증축 사업에 관계하였던 일본인이 이 단체를 일선 융화 단체로 선전하자 일단 해산한 후 10월 5일 재건 총회를 개최하였다. 해체된 시기는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2년 6월 기관지 『형설(螢雪)』을 창간하였다. 『형설』은 1923년 『자유생활(自由生活)』로 개칭하였다. 1922년 연극단을 조직하여 조선 순회공연을 계획하였다. 이는 1922년 봄 도쿄의 일화회관 부지에 건축한 기숙사 겸 회관이 협소하여 회관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923년 7월부터 8월까지 고학생형설회 연극단이 경성, 부산, 전주, 광주, 평양, 원산, 함흥 등지에서 연극과 음악회를 공연하였다. 총14개 도시에서 공연을 하였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1월 개성 등지에서 공연을 하였다. 1925년 3월 1일 재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무산청년동맹 등과 함께 3.1절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유학생 환영회와 환송회, 강연회, 토론회, 운동회, 좌담회 등을 개최하여 회원의 상호 부조와 민족 운동에 힘썼다.

의의와 평가

도쿄 지역 조선인 고학생의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조직되어 활동함으로써 1920년대 전반 조선인 고학생의 학업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김영경, 「동우회와 형설회 그리고 토월회에 대해」(『동대논총』2, 동덕여자대학교, 1971)
  • 朴慶植, 『在日朝鮮人運動史: 8.15解放前』(三一書房,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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