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

원어 항목명 大阪朝鮮留学生学友会
한자 大阪朝鮮留學生學友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오사카부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3년 12월
원어 항목명 大阪朝鮮留学生学友会
성격 학생단체
정의

1923년 12월 일본 오사카부에서 조직된 오사카 지역 재일 조선인 학생 단체.

개설

1923년 12월 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재일 유학생들이 결성하였다. 일본 도쿄도에서는 유학생학우회가 1910년대부터 활동하였으나 오사카에는 조선인 유학생이 적어 1920년대 이후에 유학생 운동이 시작되었다. 1924년 8월 오사카 조선노동동맹회, 조선 무산자사회연맹 등 노동 단체와 함께 조선압박탄핵대회를 열었다. 1929년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 내부에서 조선인 단체 해체 논의는 학우회에도 영향을 미쳐 학우회 내에서 사회주의계의 해소파와 민족주의계의 반대파로 분리되었다. 해소파는 조선인 학우회의 혁명적 해방 투쟁과 민족적 투쟁을 혼합해 고학생의 계급적 의식을 민족 공동주의로 혼탁하게 해 불분명하게 한 것은 명확히 오류이고 혁명적 해방 투쟁은 계급 투쟁에 의하지 않아 실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학우회와 같이 민족 공동 투쟁을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오류이므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해소 반대파는 민족적 차별 대우를 벗어나는 것은 민족 공동의 힘으로 해야 하고 극좌 분자의 주장처럼 계급적 대립을 근본 사상으로 하는 혁명적 운동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변천

1931년 1월 재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가 해체된 뒤에도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는 존속하였다.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는 1931년 9월 27일 정기 총회를 열고 지부 제도를 철폐할 것, 회원 확대, 규칙 개정, 총회 개최, 기관지 발간 등을 가결하였다. 1931년과 1932년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 대표자는 백병기(白秉基)이며 1933년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 대표자는 장응선(張應善)이었다.

의의와 평가

오사카 조선유학생학우회는 유학생 친목 단체로 발족하였으나 이후 민족 운동 단체로 발전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在日朝鮮人関係資料集成』2(三一書房,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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