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회 나고야 본부

원어 항목명 大同会名古屋本部
한자 大同會名古屋本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0년 11월
해체 시기/일시 1937년
원어 항목명 大同会名古屋本部
성격 내선융화단체
정의

1930년 11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설립된 내선 융화 단체.

개설

1930년 11월 2일 결성되어 아이치현 나고야시 니시구 도리니시정에 사무소를 설치한 내선 융화 단체이다. 일본 공안 당국은 대동회 나고야 본부를 민족주의계 단체로 규정하기도 하였으나 활동 내용에서 민족 운동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2년 무렵에는 최대의 내선 융화 단체인 상애회와 비교될 만큼 중부 일본에서는 최대 규모급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구성을 보면 대부분 일본인이 간부를 맡았고, 회원 수도 수십명에 그치고 있다. 일본인 유력자들이 중심인물이 되어 있고, 소수의 조선인들이 활동가로 나선 것이라고 여겨진다. 회장은 미야지 다이치로, 부회장 1명, 총무, 간사 약간 명으로 이루어졌다. 1931년 회원 수는 52명이었다. 1932년 개최된 임시 총회에는 일본인 정치가 및 유력자들을 포함된 400명이 참석했다. 만주 사변 발발 이후 개최된 시점에서 일본인 유력자들은 ‘일본과 만주의 신관계를 통해 세계와 동양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라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찬양하고, ‘일선 융화, 내지 조선인의 생활권 옹호, 인격 존중, 정치권 진출’ 등을 주장했다. 일설에는 단체의 총재로 조선의 구 왕족을 영입하려 했다는 추정도 있다.

하지만 유력 인사들이 모였던 임시 총회의 기세와 달리 1932년 대표자는 조선인인 전무용으로 되어 있고, 회원 수는 30명, 1934년 1935년 20명, 1936년 10명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회원 수와 ‘중부 일본 최대 규모급’이라는 사업의 범위가 일치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내선 융화 단체의 활동은 크게 교화와 구제로 나눌 수 있고, 대동회 나고야 본부 역시 이를 주요 사업 내용으로 내세웠다. 재일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소개, 야학 운영, 무료 숙박, 진료 사업 등을 펼쳤다. 1931년 실적을 보면 직업 소개 126명, 인사 상담 227명, 무료 숙박 819명, 시식 구제 288명, 무료 치료 146명, 혼례 및 장례 30명, 노동 야학 연인원 698명 등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1931년 발생한 만보산사건에 대해 항의 격문을 노동 소개소에 살포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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