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大同協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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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同協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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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大同協会 |
성격 | 내선융화단체 |
1928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내선 융화 단체.
1923년 관동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는 한편, 융화를 내세우는 단체 설립을 추진하였다. 대동협회도 이러한 취지에 동조하여 1928년에 설립된 내선 융화 단체였다. 대동협회는 재일 조선인의 생활 보호, 사상 선도, 내선 융화 실현을 목적으로 삼았다. 실질적인 활동으로 간이 숙박, 무료 숙박, 직업 소개, 구호 부조, 아동 보호, 수양 강화 등을 내세웠다. 일본에 일자리를 찾아온 조선인들이 특별한 연고가 없을 때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조선인이 운영하는 숙박 업소 겸 직업 알선소였다. 대표적인 친일 인사인 박춘금과 이기동은 일찌기 이러한 성격의 상애회를 설립하였다. 대동협회도 상애회의 전철을 밟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협회는 재일 조선인의 주택난 해결을 위해 도쿄의 기타센주[北千住]에 3,305.78㎡[1천 평]의 부지를 얻어 3만 엔의 경비로 조선인촌을 건립하고, 구매 조합을 만들어 자급자족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실행 여부는 알 수 없다. 조선 총독부 학무국 도쿄 특파원은 대동협회가 ‘도쿄 여러 융화 단체 중 가장 성실히 사업을 수행해 업적을 올리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1936년 5월 아라카와구[荒川区]에서 조선인 사회사업 동지 구락부 창립 취지서를 작성해 관계 단체에 배포해 조선인 단체 간담회를 열고자 시도하였다. 대동협회의 중심 인물은 이선영과 신정식이었으며, 이선영은 1936년 구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일본의 건국 기원제에 상애회 총본부와 함께 대동협회 중앙 본부가 참여했으며, 1936년 조선 총독부에서 국고 보조금 450엔을 교부받았던 사실에서 친일 융화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