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쓰방적

원어 항목명 摂津紡績
한자 摂津紡績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89년 4월 25일
개칭 시기/일시 1918년
원어 항목명 摂津紡績
정의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 후 조선인 노동자를 최초로 고용한 일본의 대형 방적 회사.

개설

셋쓰방적은 당시 일본의 주력 산업이었던 대형 방적 회사로,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간사이[関西]의 기즈가와[木津川]나 아카시[明石] 공장 등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최초로 대거 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9년 4월 25일 오사카 센바[大阪船場]의 유력 인사 11명이 발기인이 되었고, 다카다 큐에몬[高田久右衛門]을 사장으로 세우고 초기 자본금 120만엔[1890년 말 불입금은 40만엔], 방적기 6만 추를 계획하고 창립되었다. 1889년 5월 오사카부[大阪府] 니시나리군[西成郡] 난바무라[難波村] 목재저장소[材木置場] 49번지에 본사 공장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또한 7월 기즈가와시리[木津川尻]의 구 셋쓰방적 본사 공장의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본사 2·3공장의 신설에 이어 다이와방적[大和紡績], 히라노방적[平野紡績], 고리야마방적[郡山紡績]을 산하에 흡수 합병하였으며 보다 더 많은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에서 아카시에 공장을 설립하여 1909년 6월부터 운영하였다.

설립 목적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 방적 산업의 생산 확대를 촉진시켰기 때문에 셋쓰방적 아카시 공장에서 노동력 확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조선인 여성 노동자 150명을 고용하였다.

변천

1918년 아마가사키방적[尼崎紡績]과 합병하여 다이니혼방적[大日本紡績]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해방 전후 니치보방적[ニチボー紡績]으로 변경되었고 1964년 니혼레이온[日本レイオン]과 합병하여 유니치카[ユニチカ]로 개칭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셋쓰방적 기즈가와 공장에서는 1911년부터 조선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일본 방적 산업의 생산 확대를 촉진시켰기 때문에 아카시 공장에서도 노동력 확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조선인 여성 노동자 150명을 고용하였다. 이중 약 100명은 경상남도 진주 출신이었다. 조선인 여성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저임금에 굉장히 가혹하여 1914년 노데[野出] 공장의 조선인 여공들이 오사카 경찰서에 착취를 호소하는 사건도 있었다.

참고문헌
  • 강재언, 『일제하 40년사』(풀빛, 1984)
  •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청아출판사, 2003)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吉阪俊藏, 『조사보고서』(1917)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