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예술좌

원어 항목명 朝鮮芸術座
한자 朝鮮藝術座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5년 5월 3일
해체 시기/일시 1936년 10월
원어 항목명 朝鮮芸術座
성격 극단
설립자 김파우|김두용
정의

1935년 일본 도쿄도에서 고려극단 멤버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재일 조선인 극단.

개설

조선예술좌는 프롤레타리아 연극 운동에서 벗어나 합법적 연극 활동을 통해 새로운 연극을 표방하며 설립하였다. 조선 문화를 일본에 알리며 조선의 진보적인 연극을 수립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조선예술좌는 조선의 고전적 예술[연극]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널리 일본의 다양한 인사에게 소개하고, 조선 민족 연극 예술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힘을 다함으로써, 독자성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을 창조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35년 도쿄 신연극연구회에 참가하지 않은 김파우, 김두용을 중심으로 한 11명이 조선예술좌를 설립하였다. 1936년 1월 5일 도쿄 신연극연구회와 통합해 조선예술좌로 재탄생하였다. 1936년 10월 단원들이 구속되어 극단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재일 조선인 연극인 중 풍부한 무대 경험이 있었던 안영일, 이화삼, 김일영, 김파우, 오정민, 김사량 등이 조선예술좌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3월 3~4일 이틀 동안 상연된 조선예술좌의 첫 공연은 「울릉도」, 「조정 재판」, 「보통학교 선생」이었으며 600여 명의 관객이 관람하였다. 일본 연극계의 중진인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원작 『보통학교 선생』을 오정민이 재일 조선인 학교를 다룬 작품으로 번안하여 상연되었다. 이후 「빈민가」, 「선술집」, 「서울의 지붕 밑」, 「서화」, 「토성랑」, 「소」, 「춘향전」, 「산사람들」 등의 작품을 상연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예술좌는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문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활발한 연극 활동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조선을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무라야마 도모요시가 주도하던 신협 극단과 협력하며 일본 연극계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이두현, 『한국 신극사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 김미도, 「증언으로 찾는 연극사」1(『한국연극』, 한국연극협회, 1992)
  • 박영정, 「일제 강점기 재일본 조선인 연극 운동 연구」(『한국극예술연구』3, 한국극예술학회, 1995)
  • 김사량, 「재일 조선인 연극 운동의 전개 과정과 공연 방식 연구」(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6)
  • 李正旭, 『敗戦前における村山知義の挑戦: 交差する映画·演劇·民族』(筑波大学 博士論文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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