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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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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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31년 |
성격 | 동창회 |
1907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조직된 조선인 유학생의 동창회를 모태로 한 단체.
구한말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고등 교육 기관에 정식으로 입학을 한 경우는 없으며, 당시 조선 정부의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왔던 2명이 남아서 동경에 있는 게이오기주쿠에 유학생 자격으로 입학한 것이 효시인 것으로 알려졌다. 1895년 청일 전쟁이 끝난 후에는 유학생 수가 점차 증가하여 각종 단체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를 필두로 1912년 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이 있었다. 이 시기의 유학생들은 대부분 대도시인 도쿄에 집중하는 현상을 보였다. 유학생 전체 수의 80~90%를 차지할 만큼 두드러졌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유명한 사립 대학인 와세다[早稲田]대학의 동창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1907년에 와세다대학 조선유학생동창회로 시작하여 1931년에는 우리동창회로 개칭되었다. 이를 계기로 1919년에는 각 대학들의 동창회 활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중심에는 와세다대학, 메이지[明治]대학, 주오[中央]대학, 게이오대학 등 도쿄 소재의 유명 사립 대학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호세이[法政]대학, 센슈[專修]대학, 도쿄[東京]대학, 교토[京都]대학, 도시샤[東志社]대학,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등에서도 동창회를 결성하여 일제 강점기 일본 내에서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귀국하는 관계로, 유학생과 재일 조선인 학생 수는 감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재일 조선인 학생 간의 좌우 이념 갈등으로 각 대학의 동창회 활동은 정체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각 대학의 졸업생들에 의한 친목을 돈독히하는 동창회가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활동한 동창회가 와세다대학 우리동창회라고 할 수 있다. 와세다대학 동창회를 계기로 해서 메이지대학 코리아동창회, 주오대학 코리아동창회, 호세이대학 우리동창회, 게이오대학 코리아동창회, 도시샤대학 코리아동창회, 리츠메이칸대학 우리동창회 등이 적극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중에서는 중앙대학이나 니혼[日本]대학과 같이 회보를 발행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한 동창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