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天道教靑年会 東京支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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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道敎靑年會 東京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1년 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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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39년 4월 3일 |
개칭 시기/일시 | 1926년 10월 3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1년 2월 16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4월 |
원어 항목명 | 天道教靑年会 東京支会 |
성격 | 종교 단체|청년 단체|민족주의 계열 단체 |
설립자 | 방정환|김상근|이기정|박달성|정중섭 |
1921년 일본 도쿄도에서 설립된 천도교 청년 단체.
천도교청년회는 1919년 9월 2일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라는 명칭으로 조직되었다.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는 1920년 4월 5일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23년 9월 2일 천도교청년당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천도교가 1926년 1월 신구 양파로 분화되었는데, 신파 측 청년은 천도교청년당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구파 측 청년은 1926년 4월 3일 천도교청년동맹을 창립하였다. 1930년 12월 23일 천도교 신구 양파가 합동하자 천도교청년당과 천도교청년동맹도 합동하여 1931년 2월 16일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되었다. 1932년 4월 2일 천도교가 다시 신구 양파로 분화되자 천도교청우당은 신파 측은 천도교청년당, 구파 측은 천도교청년동맹으로 각각 분화되었다. 이후 천도교청년동맹은 1936년 12월 23일에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천도교청년당은 1939년 4월 3일, 천도교청년회는 4월 4일에 해산되었다.
천도교청년회의 전신인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의 취지서에 의하면 “신성의 심법을 체하고 내로 덕성을 수련하며 외로 지식을 강구하며 진하여 오교리의 천명을 기도하며 오교풍의 광포를 봉조하여써 대천대지가 총히 신성의 심법하에 융화하기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는 1921년 2월 13일에 설립하고 1921년 4월 5일 발회식을 가졌다. 박상희의 「동경조선인단체역방기」에 의하면 1921년 2월에 설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설립 당시 지회장은 방정환이었다. 천도교청년회가 천도교청년당으로 확대 발전되자 1926년 10월 3일에 천도교청년당 도쿄당부로 조직체를 변경하였으며, 천도교청년당이 신파의 천도교청년당, 구파의 천도교청년동맹으로 분화될 때 천도교청년당 도쿄당부는 신파에 속하였기 때문에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1931년 2월 16일에 천도교청년당과 천도교청년동맹이 합동하여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되자 천도교청우당 도쿄당부가 되었다. 1932년 4월 2일에 구파 측 청년들이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를 조직하자 천도교청우당 도쿄당부는 천도교청년당 도쿄당부로 1939년 4월 3일에 천도교청년당이 해산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는 설립 직후 방학을 이용하여 귀국한 후 1921년 6월과 7월에 천도교 진리의 선전과 현대 사상의 고취를 위해 전국 순회강연회를 가졌다. 1923년 3월 1일에 북성회, 조선노동동맹회 등과 함께 기념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 대지진으로 조선인이 학살되고 이재민이 늘어나자 기독교청년회와 조선동포구제회를 조직하여 구호 활동과 학살된 조선인을 수습하였다. 1926년 9월 5일에 관동 대지진 3주년을 맞아 추모회를 개최하였다. 1927년 2월에는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에 참가하여 연대 투쟁을 모색하였으며, 1927년 7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하계 사회 강좌를 개설한 바 있다. 1927년 11월에는 기관지 『동학지광(東學之光)』을 창간 발행하였다. 1930년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고국 순회 강연을 진행하였으며, 1930년 11월 1일에는 「조선 민중에게」라는 유인물을 국내에 배포하였다.
식민지 조선에 있는 천도교청년회 중앙본부에서 문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산하에 계층별로 유소년부, 학생부, 청년부, 여성부, 농민부, 노동부, 상민부 등 7개 부분을 두었으며, 부분 기관으로 천도교소년회, 천도교학생회, 천도교내수회, 천도교청년회, 조선농민사, 조선노동사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천도교청년회 도쿄부도 천도교학생회 도쿄부, 천도교소년회 도쿄부, 천도교내수단 도쿄부, 조선농민사 도쿄지사를 설치하였다. 또한 내외의 정세를 연구하기 위해 특종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외에 천도교소년회 도쿄부에서는 방정환을 초청하여 동화 대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천도교청년회는 설립 직후 포교 활동으로 천도교인이 늘어나자 1922년 1월에 천도교 도쿄 전교실을 설립하였으며, 1924년 천도교 도쿄종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해마다 11월 1일은 포덕의 날이라 하여 재일 조선인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당시 회원이 20명 정도였지만 1926년 말경에는 55명으로 늘어났다. 1939년 4월 3일 식민지 조선에서 천도교청년당 중앙본부가 해체됨에 따라 천도교청년당 도쿄부도 해체되었으며,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식민지시기 도쿄의 민족주의 계열 청년 단체로 민족 의식을 앙양시켰으며, 국내 천도교 청년 운동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희생자 조사와 이재 동포 구제에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