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天道教靑年同盟 東京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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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道敎靑年同盟 東京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9년 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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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39년 4월 4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1년 2월 16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12월 23일 |
원어 항목명 | 天道教靑年同盟 東京部 |
성격 | 종교 단체|청년 단체|민족주의 계열 단체 |
설립자 | 동치후|민은기|김호섭|김기종 |
1929년 일본 도쿄도에서 설립된 천도교 구파의 청년 단체.
천도교청년동맹은 천도교 구파의 청년 단체로 1919년 9월 2일 조직된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에 연원을 두고 있다.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는 1920년 4월 5일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번경하였고, 천도교청년회는 1923년 9월 2일 천도교청년당으로 재조직되었다. 1925년 천도교가 신파와 구파로 분화되자 천도교청년당도 1926년 4월 3일에 신파 측은 천도교청년당을 고수하고, 구파 측은 천도교청년동맹을 창립하였다. 이후 1930년 12월 23일에 분화되었던 천도교가 합동을 함에 따라 1931년 2월 16일 천도교청년당과 천도교청년동맹도 합동하여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1932년 4월 2일 천도교가 다시 분화되자 청년 단체도 분화되었는데, 신파 측은 천도교청년당, 구파 측은 천도교청년총동맹을 거쳐 1932년 12월 23일 천도교청년동맹으로 복귀하였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지회는 1929년 2월 17일 창립되었다.
천도교청년동맹의 규약은 인내천주의 아래 육체와 정신의 희생, 인내천의 교화로 인간 개조, 일체 결의에 절대 복종으로 천도교의 목적인 보국안민, 광제창생, 포덕천하를 사회화하는 데 있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의 설립 목적도 동일하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는 1929년 2월 17일 창립 당시 대표위원 민은기, 상무위원 김호섭과 김기종을 선임하였으며, 포덕부·서무부·경리부 등 3부를 두었다. 1931년 2월 16일 신파 측 천도교청년당과 구파 측 천도교청년동맹이 합동하여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되자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도 천도교청년당 도쿄당부와 통합하여 천도교청우당 도쿄당부로 조직을 변경하였다. 1932년 12월 23일 천도교청우당이 분화되어 구파 측 천도교청년동맹이 복귀하자, 구파 측 천도교청우당 당원은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로 복귀하였다. 이후 1939년 4월 3일까지 유지되었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는 천도교 신파의 자치론에 대해 반대하였지만 신파의 천도교 청년 단체인 천도교청년당 도쿄부보다 세력이 작았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는 1929년 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하기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과목은 천도 교리, 보통 상식, 수학 등이었으며, 강사는 민은기, 동치후, 신부경, 김호섭이 담당하였다. 1929년 11월 24일 정기대회를 개최하고 대표 위원에 신부경, 상무 위원에 동치후와 장기철을 선임하고, 종리원 설치, 포덕, 유지 방침, 강습 토론 등을 결의하였다. 1930년 6월 1일 임시 대회를 개최하고 하기 강습회와 중성(重聲) 지사 설치 등을 결의하였다.
천도교청년동맹 도쿄부는 1939년 4월 3일 천도교청년동맹 중앙 본부가 해체됨에 따라 자동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