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日本労働組合全国協議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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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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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36년경 |
원어 항목명 | 日本労働組合全国協議会 |
성격 | 전전(戰前) 일본 내 노동조합의 전국 조직 |
1928년 12월 결성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해소 후 재일 조선인들이 합류한 일본 노동조합의 전국 조직.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는 1928년 12월 결성된 일본 공산당계 노동조합의 전국 조직이며, 1928년 4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에 의해 해산된 일본노동조합평의회의 후신으로 발족하였다. 일본 최초의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가맹 조합으로 일본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있었다. 또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는 전국적 산업별 조합의 통일체로, 산하에 금속·화학·출판·섬유·토건·교통 등의 산업별 조직을 두고 있었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기관지로 『노동신문(勞動新聞)』이 있었고, 각종 출판물을 발행하였다.
1929년 12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역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의 해소를 결정하였는데 김호영(金浩永), 김두용(金斗鎔) 등이 주도하였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 각 조직들 내부에서 찬반 논의가 분분하였으나, 결국 당시 국제적인 노동 운동의 흐름에 따라 해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에 있던 각지의 노동조합들이 잇따라 해체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산하의 각 산업별 노동조합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 해류한 후 여기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재일 조선인 노동자의 수는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1929년 12월 해소 당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조합원 수는 무려 33,000여 명이었으나, 1931년 말까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산하 각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선인 노동자는 4,500명으로 격감하였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의 운동이 전성기에 이르렀던 1932년 전반기 즈음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과반수 이상이었고, 조선인 노동자들이 각 산업별 노조의 간부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는 적색노동조합 이론에 의거하여 합법 조합 내에서 혁명적 반대파를 조직하고, 산업별 노동조합에 기초한 혁명적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는 1932년 전반기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9월 ‘천황제 타도’를 내세운 후 연이은 탄압으로 급속히 쇠퇴하였다. 1934년 1월 조합 재건 조직 방침 등을 둘러싸고 일본 공산당과 대립하였는데 이후 사실상 괴멸 상태에 빠졌다. 1936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재건위원회가 검거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